고모님의 고향순정!

옛날에는 억수로 크고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곳
허나 지금은 허름한 집이
겨우 스물 네채뿐
징용 끌려가기 싫어서
열다섯 나이에
연지 찍고 곤지 찍고
사십 중반의 노총각에게
시집오게 된 곳
지아비 여의고 정신없이
부대껴서 살아온 지도
어언 칠십평생

우는 논떼기 몇 마지기는
큰 애 장가갈 때 떼어주고
아래 몇 마지기는
둘째 애 장가갈 때 떼어주고
몇 마지기 안되는 밭떼기는
셋째 놈 장가갈 때 떼어주니
이제 남은 거라곤
쬐그만 논, 밭떼기랑
늙어빠지고 꾸부정한
몸뚱아리 뿐이라예….

그래도, 당신은 이곳이 좋데라!
이른 새벽부터 호미들고
손바닥만한 전답을
파고, 일구고, 가꾸누나
한번은, 큰 아들네 아파트에서
단 하루도 살지 못해
줄달음 쳐서 와버린 곳

누가 뭐라캐도 여가 좋데나!
내남편의 체취가
흠뻑 배어있고
뿌리는데로 거둘 수 있는 곳
누가 뭐라캐도 여서 살끼라!


시작노트:
도회지에서 태어난 사람이든 시골서 태어난 사람이든 누구든지 고향을 그리고파 한다.
거의 팔십평생을 덕우산 자락에서 집과 논과 산을 지키며 살아오신 고모님을 보노라니 문득 이런 시상이 떠올랐다.
장성한 아들이 셋이나 되고 도회지에서 선생하고, 사장하고 반듯하게 잘살건만 고모님의 고향애정을 끊을 수 없는 모양이다.
부디 고향을 벗삼아 오래 오래 만수무강하시길….



작 성 자 : 권순옥 marg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