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설경마에 관한 제보를 우연히 건네 들은 기자, 조금 과장해 기절초풍 하는 줄 알았다. 전국 각지에 지역을 관할하는 센터가 있고 센터를 중심으로 십 수 개의 지국이 문어발처럼 뻗어 영업을 하고 있다는데 거래 규모나 영업방식이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모 지점 몇 층에 모여 자기들끼리 얼마를 걸고 얼마를 나눠가졌다는 식은 이미 애교다. 요즘 사설경마업자들은 마사회도 하지 못하는 인터넷뱅킹과 폰뱅킹을 이용해 수십 억 원 대 고객을 유치하고, 60평 대 고급 빌라에서 대형 프로젝션 TV를 설치해 경주장면과 실시간 배당을 제공하며 더없이 안락한 환경을 만들어준단다.

청량리, 영등포, 강남 일대가 주무대였지만 얼마전엔 군산, 대전 등 지방에서도 조직폭력배가 개입된 사설경마단이 적발돼 전국적으로 그 규모가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규모가 적은 지국의 경우 경주 당 매출이 1억 원 가량이라는데, 그렇다면 1개 센터로 모여드는 매출액은 어림잡아도 15억 원 이상이고, 이런 센터가 3개만 있다고 추정해도 현재 서울경마장의 평균 매출액에 근접한다.  

불황과 물가인상이 동반된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하고 있다고 경제학자들은 경고한다. 여기저기서 돈줄이 말랐고 서민들은 교육비를 제외하곤 먹는 것, 입는 것에 인색해졌다.

그런데, 돈 구경하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요즘, 서울경마장마저 사상 유례 없는 불황에 시달리는 이때, 사설경마업자들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단다. 하다 못 해 동네 깡패들도 사설경마가 돈 되는 ‘사업’이라며 속속 뛰어들고 있는 추세라는데 어찌된 일일까. 불황으로 문을 닫는 유흥업소들이 늘면서 이곳에 기생해있던 세력들은 새로운 돈줄이 필요했고 경마시장이 바로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거대한 자금이 모이는 데다 불법영업을 방해하는 법적 장치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마사회는 지금 앉은자리에서 두 눈 멀겋게 뜨고 제 밥 그릇 고스란히 내주고 있는 것이다.

사설경마 실태를 빙산의 일각만큼 주워 들으며 꾸역꾸역 경마일수를 채워 넣고 제주교차경주를 늘리는 마사회의 분주한 궁여지책이 더 초라해 보였다.

사설경마나 인터넷구매대행과 같은 유사마권발매행위를 근절키 위해 마사회법 개정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17초마다 한 건씩 강력범죄가 발생하는 요즘 시대에 사설경마가 무슨 큰 죄라고 검경에서 눈에 불을 켜겠나. 혹 사후단속을 강화한들 변화무쌍한 수법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그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겠는가.

그나마 경마장을 찾는 팬들은 순진한 것이다. 경마일수를 억지로 늘려 이들의 주머니를 쥐어짜는 것보다 수익구조를 개선해 경마산업전체의 내실을 기하고 사설경마가 발붙일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이고 최상인 정책이다.

연매출 7조원에 순익 2조원이던 게 엊그제다. 그때도 말이 순익 2조였지 레저세, 교육세, 농특세, 법인세 등 각종 세금만 1조 4천억에다 경마상금이나 인건비 같은 순수비용을 제하면 남는 것은 3천억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외부로 빠져나가는 축산발전기금 등 특별적립금이 2천억이라니… 경마장을 짓고 좋은 말 들여와 좋은 경마환경 만들기에 투자해도 모자랄 판인데 여기저기 손 내밀고 뜯어가는 곳은 이렇게나 많으니 목 빼고 이제나저제나 환급률 인상만 바라며 말없이 기다리는 팬들에게 뭘 어떻게 돌려줄 수 있을까.

기왕 줄어든 매출은 어쩔 수 없다. 단기간 만회하려 전전긍긍하기 보다 넓은 시야로 크게 봐야 할 것이다. 당장 1백억, 2백억 늘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합리적 수익구조를 통한 경영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춰 같은 매출이라도 더 효과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밑 빠진 독에 아무리 많은 걸 채워넣는다 한들 끝이 있겠는가.

레저세 감면과 기타소득세 폐지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지방세법 개정이 마사회에 의해 추진 중에 있다. 수확이 있길 바라지만 “경마는 망해도 국가 경제에 별 타격이 없다”는 정부 관계자의 시각이나, 5천억 들여 경마장 지어놨더니 레저세 감면이란 소리에 난색부터 드러내며 ‘뽑아 먹을’ 궁리만 하는 부산시의 태도 앞에 걱정만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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