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결과 기수, 누구 손을 들어줄 것인가

올림픽 남자체조 오심 판정으로 지난 한 주간 세계 언론이 들끓었다. 선수의 동작을 보고도 기준점수가 10.0짜린지 9.9짜린지 판단하지 못했다면 참으로 무능한 심판이 아닐 수 없다. 또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결과를 조작하기 위해서였다면 능력 부족보다 더 심각한 자질 부족이다.

기준점수가 정해져있는 체조에서조차 판정 시비가 빈발하는데 최선을 다 했는지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경마에서의 심판은 얼마나 많은 의심과 논란에 시달릴 것인가.

제재를 내리지 않으면 ‘눈을 감고 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제재를 가하면 가하는 대로 ‘과했다’는 원성이 생겨나는 현실이다.

지난주 이동국 기수가 뜻밖의행운으로 기승정지를 당한 것에 대해서도 역시나 논란이 일었다. 전문가조차 일부에서는 “가지 않기 위해 억지로 제어하는 것은 일일이 잡아내지 못하면서 최대한 추진을 한 것에 대해 과도한 선행경합이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제재를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더한 ‘나쁜 짓’은 용인하는 대신 애교쯤으로 봐줘도 될 사안에 재결이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는 의미다.

하지만 심증만 있는 ‘나쁜 짓’을 벌할 수 없다고 해서 눈에 뻔히 보이는 ‘덜한 짓’을 봐줘야 한다는 것에 기자는 반대한다. 발견하지 못한 큰 허물이 있다고 해서 작은 허물을 덮어줘야 한다는 것은 온당치 못한 논리다.

지난해 임대규 기수가 언어카운티들리로 2위 입상을 하고도 같은 이유 때문에 기승정지를 당했던 전례가 있지 않았나. 당시에도 논란이 됐던 것은 물론이다. 유사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것은 소모적 논란이고 재결 권위를 자꾸만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재결 기능의 핵심은 공정한 룰 집행이고 이를 위해선 권위가 인정돼야 한다. 경마에서의 심판은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는 식의 명쾌한 법전이나 기준이 존재하는 게 아니질 않나. 전적으로 재결위원의 손에만 맡겨져 있기 때문에 자꾸 시비를 걸게 되면 문제가 한도 끝도 없이 확대되기 마련이고 재결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다. 재결이 위축돼 웬만한 사안에는 눈을 감아 버린다든지 솜방망이 제재를 남발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경주기강이 흐트러질 수 있고 팬들의 ‘갔다 안갔다’식의 부정적 오해는 더 확대될 게 뻔하다.

얼마전 사석에서 만난 한 기수는 “재결이 ‘가라’ 채찍도 잡아내더라”면서 놀라워했다. 가라 채찍이란 실제로 채찍을 대는 게 아니라 거짓으로 시늉만 하는 것을 말한다. 말에게 겁을 주기 위해 채찍을 보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재결의 눈을 속이기 위해 하는 행위다. 또 다른 기수는 승부의지가 없는 말에 올라 소위 ‘끌려’들어 갈까봐 결승선에서 채찍을 일부러 버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재결위원이 보기에 거짓 채찍질이었고 일부러 채찍을 버린 행위였다 한들 기수 본인이 아니었다고 하면 재결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쯤 되면 하나의 완성된 경주를 두고 기수와 재결위원들은 치열한 싸움을 하고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재결위원들조차 부정한 행위가 10번 발생할 때 고작 1개 정도 잡아낼 수 있다고 토로한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 알면서 모르는척 해야할 때도 있고, 전혀 낌새를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기수의 ‘연기’가 완벽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속이려는’ 기수와 이를 ‘잡아내려는’ 재결의 싸움에서 팬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 것인가. 팬의 입장을 대신해 그나마 의혹을 해소하고 법집행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재결이다.

한국경마에서 부정의 요소가 송두리째 뿌리뽑히지 않는 한, 팬들이 여전히 ‘안 갔다’고 여기는 경주가 존재하는 한 재결의 기능과 역할은 계속 강화돼야 한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철퇴를 가할 줄 알아야 하고 선행경합에 대한 제재처럼 기수, 조교사의 작전권을 일부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더라도 일관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또 과도한 선행경합 뿐 아니라 고의적 늦발, 불성실한 경주전개 등 다분히 주관적일 수 있는 판단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분통 터지는 기수의 플레이를 보고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팬의 입장에선 그래도 재결의 결정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게 유익하다. 재결이 부정을 감싸고 옹호하지 않는 한.

【편집국 차장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