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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는 조교사, 관리사가 주인대접 받아야 경마도 발전한다.
-세상사 모든 일이 화려함 뒤에는 숨겨진 노력이 있기 마련이다. 팬들의 환호 속에 경주로를 질주하는 말과 기수, 그들을 지휘하는 조교사.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관리사들이 없다면 결코 누릴 수 없는 화려함이다. 지난달 29일(금) 10년 이상 근무한 세 명의 관리사가 후배 관리사들을 비롯한 많은 경마인들의 축하 속에 정년퇴임식을 갖고 정든 과천벌을 떠났다. 그 중 16년 동안 경마장 최일선에서 땀흘려온 박덕상 관리사를 만났다.
-깊게 패인 주름살만큼 험난했던 젊은 시절
41년 대구에서 태어난 박덕상 관리사는 그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살만큼이나 젊어서부터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험난한 인생길을 헤쳐온 인물이다.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은 약초재배. 자신이 직접 경북 월성의 국유림을 개간하는 등 열의를 갖고 뛰어들었지만 그만 재래종 약초의 종근(뿌리)을 모두 도난 당하는 바람에 큰 손해를 입는다. 남은 땅에서 가축을 길러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신통치 않았다. 그 때 나이가 27세. 젊은 나이에 여러 번 실패를 맛 본 그는 군에 입대하고 제대 후에도 여러 사업에 손을 댄다.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에서 일해 모은 돈으로 친구와 함께 모 기업에 스피커를 납품하는 하청업을 시작했지만 대기업의 횡포에 밀려 거기서도 실패의 쓴잔을 맛본다. 어미 앙골라 토끼를 4만원에 구입해 키워 팔 때가 되니 공급이 넘쳐 판매가가 1천원으로 떨어졌다. 이래저래 고생이 많았던 그는 결국 85년 7월 친지의 소개로 한국마사회에 입사하게 된다. 당시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관리사 업무, 힘들지만 그것이 나의 의무다”
그가 처음 발령받은 곳은 휴양소. 경주로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부상 기미가 있는 말들을 돌보는 곳이다.
“휴양소에서 말들을 방목시켜 놓고 보면, 무리내에서 대장말, 망보는 말, 아양떠는 말 등 서열이 지워지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습니다.”
소년 시절 대구경마장 근처에 살았던 그에게 말은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았다. 휴양소에 처음 입사한 말들은 처음 며칠 간은 다른 말과 부딪치고 수난을 당하면서도 대장말에게 잘 보이면 이내 서열이 올라가 편하게 생활한다. 그는 당시 마치 갓 입사한 휴양마와 같았다. 젊었을 때부터 사업을 해, 사업가 기질이 다분한 그가 하루아침에 지시를 받는 입장에 서다 보니 처음에는 다소의 갈등도 있었을 법 하지만, “어떠한 환경이든 적응하기 마련이고 모든 것이 주어진 의무”라는 그의 인생관대로 점차 적응하고 순응하면서 누구보다도 모범적인 관리사가 될 수 있었다.
휴양소에서 일하던 그는 89년 원당목장이 생기고 휴양소가 폐쇄되면서 19조(당시 최충원 조교사)에 입사해 경마장으로 들어왔고 4년 전부터는 15조(홍순철 조교사) 소속으로 일해왔다. 관리사라는 직업이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새벽 일찍 일어나 일하는 것을 운동이라고 편하게 생각하면 건강에도 좋고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한다.
-환경 개선된 만큼 서로 아껴주고 배려해주길...
경마의 발전 속도처럼 관리사들의 작업환경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 요새는 건초나 사료를 배달시켜서 먹이지만, 예전에는 건초와 사료 조달 때문에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었다. 건초의 질이 나쁘고 먼지도 많아, 환풍기 하나 달려있는 10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하는 절단작업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고, 리어커에 사료를 싫고 모랫길을 다니는 것은 중노동이었다. 그는 후배 관리사들에게 작업환경이 나아진 만큼 서로 아껴주고 배려하는 자세를 당부했다. 너무 위계질서를 따지는 선배들이나 힘든 일을 기피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16년간 관리사로 일하면서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조교사와 관리사가 경마의 주인이 아니라, 시행체의 비위를 맞추는 역할에 그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예전에 말들을 한강으로 끌고 나가 강물에 목욕을 시키고 강가의 풀을 먹이는 등 경마발전을 위해 고생해 온 많은 조교사와 관리사가 진정한 경마의 주인으로 대접하기 위해 권위주의적인 자세를 버리고 조교사협회 등 경마단체와의 의견교환에 힘쓰는 시행체의 노력이 아쉽다고 한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물러날 때는 과감하게 물러나야 한다는 그는 앞으로 취미인 낚시를 즐기면서 시골에서 닭이나 키우며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며 웃음으로 16년간 정들었던 경마장을 떠나는 심정을 대신했다.
【권현 기자 knhn@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