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늑한 고향, 김태경 기수  
신인시절 어려움을 위로해준 ‘정방폭포’

사람이 살아가면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들을 한두가지씩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 추억중에서도 특히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처음’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서울경마공원에는 80명의 기수들이 매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승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년을 훌쩍 넘긴 고참부터 이제 경주로에 데뷔한 신인까지 각기 경주로에서 보낸 시간들은 다르겠지만, 첫 우승에 대한 추억은 비슷할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만남을 가질수록 털털한 웃음으로 떠나온 고향집을 떠올리게 만드는 김태경 기수가 기억하는 첫 승을 살펴보도록 하자. 〈편집자 주〉

김태경 기수, 그는 대화를 하는데 그리 세련되지 못했다. 아니 얘기하다보면 기억 저편에 아스란히 사그러져 있던 고향집 어르신들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털털(?)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그를 꺼려하는 사람은 없다. 당장은 세련되지 못한 말이 부담되겠지만 그의 속내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가식이 없음을 금방 느낄 수 있기 때문.
15기로 경주로에 데뷔한 그는 사실 13기와 함께 기수양성소에 입소를 했다. 하지만 군복무로 인해 15기가 되었다.
후보생 신분을 벗고 경주로에 데뷔하는 누구라도 웅대한 포부를 품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또한 이런저런 멋진 미래를 그렸지만, 시련은 곧바로 그를 험하게 담금질했다.
그렇다고 첫 승을 아주 늦게 한 것은 아니다. 90년 6월 데뷔를 한 후 9월초 소속조 마필인 ‘정방폭포’에 기승해 그 경주에선 별다른 어려움 없이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첫 기승은 아니었다. 7월초에 처음 기승했을 때는 5위를 기록한 경험이 있었다. 평소 56kg을 달았던 마필이 신인인 그가 기승하면서 53kg으로 감량을 받으면서 성적을 올린 것이다.
첫 승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다. 아니 있었다고 해도 십수년 세월의 풍파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신세대 경마팬들은 그에 대해 큰 기억은 없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 명마들에 대한 추억이 남다른 팬들이라면 그를 기억할 것이다.
명마대열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는 ‘대견’과 그 당시 호각지세를 이루었던 같은 소속조 마필 ‘헨스’의 초창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두 마필 모두 5연승을 이어가며 그에게 말타는 기쁨을 흠뻑 만끽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견’이야 모든 사람들이 지금도 기억을 해주지만, 5연승 이후 6연승 도전에서 다리부상으로 경주로를 떠나야 했던 ‘헨스’는 그가 기억하는 가슴아픈 추억의 마필이다.
그가 만난 명마는 이밖에도 많다. 유일한 경마대회 우승을 안겨준 ‘천고마비’를 비롯해 ‘우먼’,‘금선사’등도 잊을 수 없는 마필이다.
과거 추입마에 남다른 기억이 있는 그는 그때를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들지만, 현재에서 추입마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우선은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여유가 있어야 추입도 가능한 것이기 때문. 또한 최근 경주흐름 자체가 능력이 있는 만큼 빠르게 경주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권순옥 기자marg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