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페이지 - ‘내가 거둔 첫 승’
근성의 승부사, 배휴준 기수  
900m 단거리마 ‘싼타그레이’, 데뷔 한달만에 첫 우승 선사

사람이 살아가면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들을 한두가지씩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 추억중에서도 특히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처음’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서울경마공원에는 70명의 기수들이 매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승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년을 훌쩍 넘긴 고참부터 이제 2년차를 보내고 있는 신인까지 각기 경주로에서 보낸 시간들은 다르겠지만, 첫 우승에 대한 추억은 비슷할 것이다.
이번 호부터 70명의 기수들이 기억하는 첫 승을 살펴보도록 하자. 〈편집자 주〉

지금은 20년이란 세월을 경주로에서 보낸 왕고참 대열에 있는 배휴준 기수에게도 신인시절이 존재한다.
어린 나이에 기수양성소를 7기로 수료한 배휴준 기수는 16조와 첫 기승계약을 하고 데뷔전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 기승했던 마필은 ‘무적’이라는 마필로 결승선을 꼴찌로 통과했다. 한창 기대가 높았을 때지만 당시는 무덤덤했다고 한다. 그저 ‘경마가 이런 거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을 뿐.
배기수에게 첫 우승의 기쁨은 데뷔한 뒤 한달여만에 찾아왔다. 당시 9살의 고령마인 ‘싼타그레이’라는 말이 그의 첫 우승마가 된 것.
‘싼타그레이’로의 첫 우승을 어느정도 예감했기 때문에 그 기쁨이 감소했을지도 모른다. 배기수가 기수 데뷔후 두 번째 기승한 마필이 바로 ‘싼타그레이’로 2위를 기록한 경험이 있다. 지금은 상상을 할 수 없지만 그 경주에서 배기수는 채찍질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1위를 한 마필이 채찍질을 하면서 배기수를 앞질러 결승선을 통과할 때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결승선을 제일 먼저 통과하면서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아마도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기분이 좋다는 정도였다고 한다.
마명에서도 알 수 있듯 ‘싼타그레이’는 청회마로, 지금은 경주마 퇴사가 빨라져 흰색에 가까운 청회마를 볼 수 없지만 그 당시만 해도 백마에 가까울 정도로 하얀 모습을 한 마필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마필은 극도의 단거리 마필로 900m에서는 우승을 여러번 차지했지만, 1000m에서는 전혀 맥을 못추었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강군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거리를 늘렸다가 성적이 나쁘면 하위군으로 내려가 경주를 할 수 있었다.
배기수가 16조에 있던 6개월의 기간중 3개월사이에 ‘싼타그레이’는 900m와 1000m를 오가며 그에게 3승을 안겨주었다. 물론 900m에 출전했을 때만.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싼타그레이’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배기수는 말한다. 당시 함께 했던 사람들에겐 이후 수없이 많은 마필과 만나고 헤어짐이 반복되면서 흐릿한 기억의 저편으로 묻힌 것이다.
하지만 배기수에게 하얀 갈기를 날리던 ‘싼타그레이’에 대한 기억은 경마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권순옥 기자marg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