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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현지성적이 뛰어난 개별수입마들이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지금, 외국 경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과 동시에 한국경마의 선진화를 위해 꼭 필요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 중 후진적인 현행 군체계에 대해 당장은 힘들더라도 장기적으로 외국의 선진경마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아시아경마연맹(ARF)이 아시아시리즈를 준비하고 있고 가까운 일본이나 홍콩, 싱가포르 등이 이미 그레이드경주(G1,G2,G3)를 시행하고 있는 지금, 매출액 세계7위의 한국 경마수준은 차마 거론하기 힘들 정도의 최하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월드컵을 통해 위상을 격상시킨 한국축구처럼 한국경마도 세계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현행 군체계의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 보는 가운데 한국경마에도 블랙타입경주가 열리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정리해 보았다.
【이석 기자 guardme@krj.co,kr】
블랙타입경주 : 블랙타입 자격경주란 국제 경주분류 표준 위원회(ICSC:International Cataloguing Standards Committe)에 의해 부여받은 경주에서 1-3위를 기록한 말의 혈통서나 세일명부상의 주요경주 성적란에 동 경주명이 흑색의 큰 활자로 인쇄되는 경주를 말함. 블랙타입경주 성적은 마필의 몸값이나 종부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현재 한국경마는 어떤 경주도 블랙타입경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경마 군체계 이대로 좋은가?
한국경마는 세계에서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단일 경마장 체제다. 제주 경마공원이 있지만 조랑말 경주로 매출액도 미비하고 서러브렛 경주가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한국경마는 서울경마공원 하나에 철저하게 의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단일 경마장에서 보유하고 있는 마필 두수는 1450두 가량이고, 이 중 국산마가 1070두, 외국산마가 380두 가량이다. 이 마필들을 가지고 1년에 90-95일, 1100경주 정도를 소화한다.
이런 현실 아래 한국경마는 현재 특이한 경주체계를 보유하고 있다. 연령에 상관없이 국산마를 상금수득 순에 따라 5군, 외국산마를 4군으로 나누는 군체계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제도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경마선진국의 경우 경주체계의 중심은 경마대회에 있다. 연령별 경주가 일반화된 일본이나 미국경마에서 모든 마필의 목표는 더 큰 대회에 출전해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데 있다. 경주마로서의 수득상금 보다는 씨수말, 씨암말로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경주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에 비해 한국경마에선 경마대회 보다는 일반경주에서 꾸준한 상금벌이 또는 승부에 성공하는 것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제도 아래에선 정상적인 승부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경마팬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또한 외국산마의 경우 현지성적이 뛰어난 외국산 개별수입마들이 무조건 최하위군인 4군 경주에서 데뷔전을 가져야 하고 한 군 위의 경주밖에 출전할 수 없는 점핑출전 규정도 문제가 되고 있다.
선진경마로 가기 위해 반드시 개정되어야 할 현행 군체계, 과연 대안은 없는 것일까?
-당장 개혁은 어렵다. 하지만 개선은 가능하다
경주마 가용두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경주상금 규모가 적은 한국경마의 현실에서 당장 군체계 변경을 주장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하지만 대대적인 개혁이 어렵다고 개선을 포기하는 것은 구더기 무서원 장 못 담그는 우를 범하는 것과 똑같다.
현 체계에서 경마팬들이 느끼는 가장 큰 문제점은 각 군에서 상금을 최대한 벌려는 작전에 따라 승군에 걸린 마필들의 순위를 고의적으로 조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3위 승군에 걸린 말들이 강한 편성에선 전력 승부를 하지 않는다거나 1위 승군을 앞둔 말이 2위를 목표로 한다거나, 1군 이외의 경마대회, 특별경주 출전을 앞두고 승군을 꺼리는 경우 등은 경마팬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미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점에 대해 경마관계자들은 한국경마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적은 상금을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경마의 모든 사이클은 상금을 근거로 이루어진다. 벌어들이는 상금에 따라 마주들이 재투자 비용을 결정하게 되고 그에 따라 생산자들은 생산계획을 세운다. 상금이 많아지면 그만큼 마주의 재투자와 생산자의 경주마 생산이 늘어나게 되고 능력이 없는 마필들은 빨리 도태되는 긍정적 현상이 일어난다.
또한 상금이 많을수록 소위 말하는 ‘장난’을 친다는 승부회피가 줄어들게 되고 전력승부가 필연이 된다. 지금의 상금규모로는 일부 경마 종사자(조교사,기수,관리사)외에는 수입이 밥벌이 수준도 안 된다는 하소연이고 보면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한국경마의 매출액은 2002년 7조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상금규모는 600억-700억 수준으로 매출액 대비 1%라는 결론이 나온다. 세계수준에 비추어 볼 때 너무 적은 상금규모이고 매출액의 2% 정도가 이상적이라는 연구결과에 비추어 보아도 상금규모의 확대는 현행 군체계의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다.
또한 최근에는 현지 성적이 뛰어난 외국산 신마들이 의미 없이 하위군 경주에 출전해 15마신 차 이상의 대승을 거두며 경주 박진감을 떨어뜨린다거나 점핑출전이 보편화된 점, 그러면서도 점핑 출전에 일정 부분 제한을 가하고 있는 점등도 현행 군체계의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지성적이 뛰어난 외국산 마필의 경우 데뷔전에서 외산4군 1000m나 1200m에만 출전해야 하는 제한을 없애 ‘자유로운 활약’을 보장해줘야 한다. 또한 점핑출전에도 한 군 위에만 출전해야 한다는 규정을 없애야 한다. 당장 1군 경마대회에서도 통할 수 있는 마필이 실전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하위군에서만 뛰어야 하는 모순을 없애야 한다.
이 밖에도 군별로 거리에 제한을 둬 하위군은 단거리, 상위군은 장거리 위주의 경주편성도 반드시 고쳐야 한다. 경주마의 특성에 맞게 경주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칼 루이스가 마라톤에 출전하고 황영조가 100m에 출전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한국경마에선 매 주 발생하고 있다. 분명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경마선진국들의 경주체계
대부분 경마선진국의 기본적인 경주체계는 연령을 중심으로 한다.
미국의 경우 Grade System(G1,G2,G3)를 중심으로 연령에 따라 2세, 3세, 4세이상 등으로 나누고 성별, 상금수득 등의 조건에 따라 경주가 편성된다.
홍콩의 경우 가장 독특한 경주체계를 보유하고 있다. 경주등급을 7단계로 나누고 철저한 레이팅시스템(핸디캐퍼에 의해 결정)에 따라 마필의 등급이 결정된다. 홍콩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로 한국경마도 벤치마킹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제도다.
일본의 경우 미국과 비슷하다. 연령을 기본으로 신마, 미승리마, 상금수득에 따른 경주가 편성된다.
위에 언급된 국가들은 모두 블랙타입경주가 당연시되는 나라들이다. 아직 경마팬들이 피부로 못 느끼는 블랙타입경주의 중요성, 한국 경마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한국경마의 세계화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자는 이번 기획을 준비하며 취재 중 마사회 관계자들과 일반팬, 경마전문가들과 한국경마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마사회 쪽과 경마전문가, 일반팬들이 경마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 틀렸지만 현행 군체계에 대해서만큼은 모두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 놓았다. 물론 일부 관계자의 경우 한국경마의 현실로 볼 때 국제적 흐름을 쫓아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포기해야 할 일이 있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한국경마가 더 이상 세계경마의 변방에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부터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 아시아에서도 변두리 취급을 받는 한국경마가 현재 아시아경마연맹에서 논의되고 있는 아시아시리즈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밀려난다면 영원한 경마후진국이 될 수도 있다는 한 관계자의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찌른다.
리얼콰이어트의 자마를 배출하기 위해 호주까지 달려간 우리의 생산자가 교배 담당자에게 “한국 같은 경마후진국에는 교배시킬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는 과연 어떤 심정이었겠는가? 앞으로 이런 수모를 후대 경마인에게 남겨 주지 않기 위해서도 한국경마의 세계화는 시급한 문제이다.
한국경마에서 블랙타입 경주가 열리고 그 이상의 G1경주가 열리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면 장기적인 계획 아래 경주체계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고, 그에 따르는 문제해결을 위해 모두가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작 성 자 : 이석 guardm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