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개토대왕릉 편자.

고구려의 편자가 남쪽으로 간 까닭은...


본지 <말산업저널>은 김태인 장제사(53·한국마사회 자격검정센터 과장)의 말편자 칼럼, ‘우리 말(馬) 문화 역사를 찾아서’를 기획 연재합니다. 장제 분야의 권위자인 김태인 장제사는 1987년 한국마사회에 입사한 이후 30여 년간 우리 장제 기술 발전과 말 문화·역사의 뿌리를 찾고자 전국 각지를 다니며 유물 수집을 하고 관련 자료를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일각에서는 우리 말산업이 국민에게 다가가려면 문화화 과정이 필수라고 합니다. 김태인 장제사 역시 “혼이 있는 말산업 발전을 위해 뿌리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며, 말편자 유물의 역사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순서로 ‘고구려의 편자가 남쪽으로 간 까닭은’을 소개합니다. - 기자 말.

아래는 경주 노서리 고분군에 있는 호우총(壺衧塚)의 전경이다.

[그림 1-2] 노서리 고분군의 호우총과 청동호우

신라는 5세기 초반까지 고구려와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광개토왕릉비문에 의하면, 399년에 백제가 왜와 가야까지 동원하여 신라를 공격하자 고구려가 군사 5만을 동원하여 구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호우총에서 발견된 청동호우에는,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이라는 4행 16자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 새겨진 을묘년(乙卯年)은 광개토대왕이 죽은 후 3년째가 되는 415년(장수왕 3년)을 의미한다.

이 명문은 지안(集安)에 있는 광개토왕릉비와 같은 서체라고 하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5세기 초까지 신라와 고구려의 밀접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청동호우는 광개토대왕 때 고구려에 인질로 머물렀던 신라 내물왕의 둘째 아들인 복호(卜好)가 장수왕 때 박제상(朴堤上-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후예로 눌지왕(417~458)의 두 동생이 볼모로 잡혀갔을 때(고구려와 왜국) 왕명에 의해 두 동생을 구출해내고 자신은 왜국에서 일왕의 귀화를 거절하고 순절한 인물로 울주에 그의 넋을 기린 치산서원이 있다)의 중재로 귀국할 때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3-6] 성산산성, 경주(수습 당시), X-ray 화면, 보존처리 후

왼쪽 사진은 지난 1993년 중국의 랴오닝성(療寧省)에 자리하고 있는 성산산성(成山山城)의 연못지에서 수습된 편자다. 그 옆 사진은 1980년경에 경주에서 수습됐다고 전해지는 편자이다. 편자의 전체적인 특징을 보면, 못 구멍이 설치된 지점이 내·외측으로 돌출이 되어 있다. 이는 못 구멍을 뚫을 때 정의 윗부분을 내려치는 순간 정의 넓이만큼 늘어난 흔적이다. 성산산성의 경우 편자 소재는 비교적 탄소함량이 적은 아공석(亞共石:hypo-eutectoid)의 거친 입자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사진 하단에 보이는 못은 비교적 탄소함유량이 적은 아공석강이나 입자가 치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7-9] 성산산성 편자의 몸통 부분과 끝 부위 편자 못의 입자 상태

편자의 몸통 부분과 못의 성분은 서로 같은 소재의 아공석강을 이용해 제작된 것으로 보이나 못은 몸통 부분에 비해 가공 시 변형과 열처리 과정을 더 많이 거쳤기 때문에 입자가 치밀한 상태임을 볼 수 있다. 이는 곧 못의 강도가 몸통 부분과 같았을 경우, 못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못을 박을 시 부러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나 재질이 부드러우면 몸통 부분에 설치된 못 구멍에 못을 박을 때 못이 짓이겨지면서 압착이 되면서 결속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선조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의 북방 유적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형태와 재질이 흡사한 편자가 출토됐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4세기경 고구려의 남진과 관련해 그 과정에서 이뤄진 기술적인 교류 및 유입됐을 것으로 생각되나 어떠한 형태로도 유사한 소재 및 편자 제작 기법 등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림 10-12] 광개토대왕릉 편자, 경주 편자, 장수왕릉 편자

대체적으로 고구려의 편자는 형태학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편자의 크기와 비례해 무게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는 점이다. 이는 편자를 제작하는 철재 안에 함유돼 있는 각종 성분(탄소함유량과 밀접한 관련)에 의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강도로 이어져 잔존 상태가 다른 철기 유물과 달리 진위 여부를 다툴 정도로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철기 유물의 잔존 상태는 수습 당시의 토양성분(진흙·모래성분) 및 발굴 당시의 유물이 묻혀 있었던 깊이 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참고로 금속의 성분에 의한 부식의 순서를 보면 백관, 알루미늄, 주철, 스테인레스, 황동, 청동, 금, 은 등이다.

둘째, 동일한 시대의 유적지에서 수습된 편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오른쪽의 경우 편자에 못 구멍을 뚫기 위하여 쇠끌(鐵鑿)을 이용해 편자 두께 1/2 정도 홈을 파고난 후, 끝이 날카로운 정을 이용해 못 구멍을 뚫었다는 점이다. 이는 못 구멍을 뚫을 때 정의 부서짐을 방지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 지금도 똑같은 방식의 제작 기법이 유지되고 있다.


글=김태인 장제사·한국마사회 자격검정센터 과장, <한반도 장제의 역사>, <장제의 정석> 저자.
교정·교열=이용준 기자 cromlee21@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