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여자지
자칭 사업가 강호영은 경마장에서 당나귀 형님을 만나, “오늘은 저를 따라 해 보세요.” 말했다. 어제 꿈에 ‘짙은 검은 색에 엉덩이가 유난히 큰 말’을 보았기에 이제 그 말을 찾는 일만 남았다. 강호영은 당나귀 형님과 광장으로 나가, 말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원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멋진 모습들이었지만 꿈에 나타난 말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몇 레인에서 등장할지 이미 오전에 뛰고 말았는지 그것도 알 길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현현하듯 말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바로 이 놈이구나 감이 왔다. 강호영은 차비만 남겨두고 그 말에 전부 걸었다. 당나귀 형님은 미심쩍어 하면서도 따라서 걸었는데 얼마를 걸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말하기 창피스러울 정도로 적은 금액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단승식에 걸 수는 없고, 중하위권의 그 말에 선두 말 세 마리를 골라 복승식으로 걸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 말은 들어오지 않았다. 5등으로 들어왔는데 놀라운 것은 같이 찍은 말들이 모두 1, 2, 3등으로 들어왔다는 거다. 이건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경마에서는 그런 건 꽝이라고 했다. 당나귀 형님의 표정을 보니 북망산을 바라보는 듯했다. 아 이제 떠날 때가 되었구나. 거기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여기서는 떠날 때가 된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강호영은 형님을 모시고 경마장을 나와 소주집으로 갔다.
강호영은 그 말이 오늘은 아니어도 다음엔 승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당나귀 형님을 모시고 또 다시 경마장에 올 수는 없었다. 혼자만 벌겠다는 게 아니라 형님의 형편상 앞으로당분간은 보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그야 벌어서 좀 드리면 될 터이고... 오늘은 일단 형님과 소주 한잔 하며 인생사를 논해 보고 싶었다.
“아우, 미안하네.“ 다짜고짜 형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강호영이 영문을 몰라 하자. 형님께선 ”사실은 전에 자네가 융통해준 그 돈.. 그걸 당장은 갚을 길 없게 되었네.’ 했다. “네? 무슨 돈요?” “왜 있잖은가 그때 50 해 준 거.” “아 그거요, 그건 형님 따라 걸었다가 터진 거 아닙니까. 그냥 드린 거지요.” 몇 달 전 당나귀 형님을 따라 걸었다가 꽤 번 적이 있었다. 헌데 형님께선 체크만 해 놓고 그 말에 걸지 않았으니 주객이 전도되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네. 그건 내가 갚아야 할 돈이네.” “나 참... 잊고 술이나 드세요.” 형님도 더는 말 않고 묵묵히 술을 마셨다. "그래 이제 앞으로 뭘 하며 지내실 건가요?” ”글쎄.....생각 중이네.” 그러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오늘 저녁에 좀 볼까?.... 그래 그럼 거기서 6시에.” 대답을 들었는지 형님께선 전화를 끊고 “같이 가세나.” 하고 말했다. “어디요?” “멋진 여자지.” 그 한 마디만 하셨다. 멋진 여자라면? 그런 일에 자신이 빠질 수는 없었다. 강호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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