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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돈을 지켜주기 위해
영화감독 김은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를 만나 데이트를 하고 마지막 코스로 카페를 들렀다가 지갑을 분실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신고를 했으나 27만원이 이미 사용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장화자는 왜소하고 궁기에 찌들었던 김 감독이 카드 부정사용의 상황을 알고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뒷돈이 보통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 돈의 상당부분은 자신 같은 여성이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이 어리숙한 사내가 돈을 다 쓰기 전에, 아니 어떤 영악한 놈들- 실은 감독 돈을 먹는데는 보통 머리로도 충분했다- 이 다 뺏겨먹기 전에 자신이 그 돈을 지켜줘야겠다는 사명감이 일어났다. 그러자면 일단 뒷돈의 규모를 알아야 할 텐데, 그걸 당장 성급하게 알려고 하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었다.
“일일 출금한도를 줄이기로 한 건 잘 하신 거에요. 분실위험도 그렇고 자칫 충동구매도 막을 수 있고요.” 이런 말을 함으로써 장화자는 자신이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다는, 자산운영의 건전성을 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자 했다. ‘돈을 좀 맡겨도 허투로 쓰지 않겠구나’ 이런 인상을 주는 게 중요했다. 남자들은 낭비벽이 심한 여자에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돈을 투여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물론 장화자는 밤새도록 홈쇼핑 프로를 틀어놓고 자는 적이 많은 바, 3만원에서 300만 원대까지 다양한 쇼핑을 즐기고 있었으며, 어느 달은 지나치게 많은 소비로 다음 달 카드를 메우느라 고투를 벌였던 것이다. 하룻밤에 수천만 원대의 쇼핑을 하고 그걸 자랑이라고 떠벌리는 년들에 비하면 자신은 정말 소박하고 검약이 몸에 배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앞으로 돈이 생긴다 하더라도 일 한도 300 월 한도 1000을 엄격히 지키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해외여행 400만원대 상품을 고를 경우 현지경비 200 정도를 감안하더라도, 국내에서는 소비를 하지 않게 되니 그만큼 이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외여행일랑 자신과 같이 하자고 김 감독이 나올 수가 있었다. 그보다는 그냥 돈으로 주면 혼자 사색에 잠기며 다녀오고 싶다고만 말할 작정이었다. 해외에는 그래도 자신의 미모와 몸매에 어느 정도 어울리는 사내와 동행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세계인이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감독이 물어 장화자는 꿈에서 깨어났다. 장화자는 생각했다. ‘여자는 많다. 남자는 언제 어디로 날아갈지 모른다. 미모는 나보다 못해도 애교가 죽이는 애도 있고 밤생활이 탁월한 것들도 있다, 돈 있는 남자에겐 여자가 득실거린다.’ 장화자는 어떤 필살의 무기로 이 남자를 헤어나지 못하게 할까 궁리하였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