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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에서 돈이 빠져 나간다
영화감독 김이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와 그녀의 집 근처 카페에서 밤늦게 담화를 나누려다
갑자기 화들짝 놀라 일어섰으니, 일어나 주머니를 마구 두들겨 댔으니, 그 다음 고개를 꺾어 의자 밑을 들여다보고, 화살같이 밖으로 나가 카페 문 앞을 빙빙 돌았으니, 그 이유가 지갑을 분실함에 있었음을 장화자는 짐작하였다. 장화자는 그 분실한 돈이 그의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것임을 일찌감치 예감하고 있던 터라 이러한 비상사태를 맞이하여 신속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그리하여 카페의 주인인 중년남자가 놀라서 바라보는 가운데 장화자 역시 쏜살같이 뛰쳐나가 김 감독의 빙빙 돌기를 정지시키고 정신이 번쩍 나게 그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던 것이다.
“빨리 신고부터 해요!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김 감독은 그제야 갈대 같은 자신을 흔드는 것이 바람이 아니라 장화자임을 알아보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다시 카페로 들어와 일단 의자에 착석하였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여러 번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여다보며 휴대폰의 번호를 눌렀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분실 신고 절차와 관련 내용이 적힌 메모를 이렇듯 소지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장화자는 그가 신고를 하는 동안 숨죽이고 옆에 서 있었다.
“네. 마지막으로 사용한 게 영화관. 네 맞습니다. 네 즉시 정지시켜 주시면 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감독은 전화기에 대고 꾸벅 절을 하고 이번엔 다른 번호를 돌리기 시작했다.
“네. 마지막으로 빠져나간 게 강남보쌈, 네 맞습니다. 네 지금 즉시 정지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네. 고맙습니다.”
감독은 절을 하고 또 다시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 인간이 카드를 왜 이리 이것저것 사용하는 거야? 두 개 정도로 교대로 사용하면 될 것이지, 짜증나게.
“네? 담배 한 보루요? ....제가 담배 한 보루를 왜 사요? ... 아 그것뿐인가요? 네? 그전에
스카치 두 병요? 그리고 그러니까 모두 27만 원요? 그게 다인가요? 네 바로 정지 시켜주세요. 이 시간에도 사용할지 모르니까요 ”
이 시점에서 장화자는 ‘그게 다인가요’ 하는 말에 주목하고 있었다. 27만 원 정도에 결코 동요되지 않는 감독의 낯빛을 보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그녀는 희망을 보았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