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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써 나가는 세상
복권 탄 돈이 10억도 더 통장에 들어 있는 영화감독 김은 오랜만에 만난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와의 만남을 이어가기 위해서 그녀에게 1억은 써야겠다고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녀의 발군의 외모와 뇌쇄적인 몸매와 비록 알아보는 사람은 없지만 상업장편영화 출연 여배우라는 캐리어를 인정해 그 정도 돈을 책정한 것이다. 그 돈을 그렇다고 한꺼번에 주겠다고 또는 통장으로 건네주겠다고 할 만큼 감독이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통장 번호 찍어주시오’ 하고 ‘왜 그러냐’ 하면 ‘용돈이나 좀 보내리다’ 하고 부리니케 은행으로 달려가 직접 은행 창구에서 ‘1억 송금, 받는 사람 장화자’ 이렇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가 놀라 기절하는 걸 상상하기 위해서 혹은 이 작자가 100만원 보낸다는 걸 실수로 잘못 보냈나 하고 두방망이 치는 가슴으로 아예 며칠간 숨어 있을 걸 상상하며 즐기기 위해서, 그러자고 1억을 호쾌히 보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 당연히 ‘옷이나 한 벌 사’입으라‘며 500만원 정도 건넸다가 차후 만남을 늘려가며 그녀의 반응과 상황을 보아가며 야금야금 건네주면 될 것이었다. 한 3천만원 즘 건너갔을 때 더 이상 돈이 없는 것 같은 포즈를 취하고, 그때 장화자가 ’우리가 언제 돈 가지고 만났느냐‘ 그러며 오히려 격려를 해 온다면 ’그녀의 격려에 힘입어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고 있다‘는 전언을 보내며 사태가 잘 해결되었다고 하고는 추가로 돈을 또 보내보는 것이다. 만약 그녀가 ’그동안 당신이 준 돈 쓰지 않고 모아두었다며 힘든데 이거라도 보태라‘며 일, 이천을 내 놓는다면 그녀에 대한 무한신뢰로 이후의 안남은 매우 아름다운 만남이 될 것이었다.
혹시라도, 복권 탄 돈이 10억도 더 있으면서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걸 그녀가 알게 되면 큰일이었다. ‘나쁜 자식, 잘 처먹고 잘 살아라!“ 라고 나오면 김 감독은 할 말이 없을 것이었다. 돈이 있으니 여자야 또 만나면 된다고 쳐도, 아무리 보아도 그녀만큼 사람을 마비시키는 여자를 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들을 하며 감독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장화자 역시 돈냄새가 나는 감독에게서 최대 5억을 뜯어내야겠다는 무서운 결심을 이 시간에 하고 있는 줄은 감독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과 여 그리고 그 가운데 놓인 10억의 향방, 이것은 시간만이 알고 있을 것이었다. 돈이 있으면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은 다시 남녀관계에 변화를 주니 돈이 써나가는 세상의 일은 변화무쌍하고도 무궁무진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