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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몫으로 얼마를 책정할까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와 헤어져 자신의 원룸으로 돌아온 김 감독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토록 뇌쇄적이고 뛰어난 몸매의 여인이 오늘 저녁 내내 다정한 눈빛과 정겨운 미소를 잃지 않고 자신을 대해준 것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고, 필름을 되돌려보며 그 세세했던 순간까지 복원해내려고 애를 썼다. 블루로얄 호텔 로비에서 만났을 때, 외국여성들의 몸매에 전혀 뒤지지 않고 오히려 더 빛을 발하던 그녀의 자태, 보쌈집에서의 소주 한 잔, 그리고 음식점 뒷골목으로 해서 우아한 카페로 이어지던, 달빛이 밝혀주던 산책로의 정취와 그녀의 실루엣, 간간이 맞닿던 그녀 팔뚝의 감촉, 그리고 음악과 향기로운 커피가 있는 카페에서의 멋진 대화들, 저녁 8시 반에 시작한 로맨틱 코메디 영화를 나란히 보며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어깨가 맞닿았던 기억, 영화 감상 후 로맨틱 정서에 물든 그녀의 장밋빛 뺨과 촉촉이 젖은 눈동자, 그리고 그녀 집 앞까지 택시로 달려가 늦은 밤의 카페에서 보맨 오늘의 마지막 절박한 시간들.
그 와중에 지갑을 분실하는 작은 사고가 있었고 수십만원의 카드 불법 사용에 대해 대범한 반응을 보이던 그에게, 빨리 신고해서 더 이상의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충고해주던 그녀의 현명함. 복권 탄 뒷돈이 10억도 더 있는 건 전혀 모르고 오직 그의 재정적 상황을 고려해 자기 일처럼 발을 동동 구르던 헌신적인 모습, 그리고 휴대폰을 조작하는라 테이블 위로 몽을 숙일 때 반쯤 드러난 가슴과 그 발달한 가슴이 말하는 어떤 약속! 즉 가슴을 매개로 우리의 앞날을 이어가자는 무안의 약속 말이다. 감독은 그 가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가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지며 어떤 세계로 떠나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좁은 룸 안을 빙빙 돌고 다니며 텔레비전이 켜있어도 전혀 보고 있지 않는 등 다른 그 무엇에도 흥미를 갖지 못한 채, 그 가슴을 통해 그녀를 꿈꾸는 일만이 주어진 사명 같았다.
누가 있어 그녀를 대신하겠는가. 내가 아무리 돈이 있다 한들 그녀 같은 여자가 내 앞에 두 번 다시 나타나겠는가. 감독은 앞으로 그녀에게 천 만원 정도는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마침내 1억은 써야겠다고 결심을 굳히기에 이르렀다.
장화자 역시 이 시간에 점 못 이루며 감독의 뒷돈의 규모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몫으로 약 오천만원을 책정했다가 5억까지 그 규모를 늘려가고 있었다, 과연 그만한 돈이 있을까? 장화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