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돈이 있는 명상
왕년의 영화배우 장화자와 데이트 후 집으로(집이라 해봐야 7평 원룸인데) 돌아온 영화감독 김은 장화자와의 하루 저녁에 있었던 달콤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소하고 빈약한 자신과 뇌쇄적이고 우월한 미모의 장화자가, 가는 곳곳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여자의 정체보다는 남자의 정체가 뭘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했을 터였다.
나의 정체? 예술혼에 불타는 불우한 영화감독이다! 히트작은 없지만, 깐느나 베를린 영화제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대종상이나 청룡상의 어떤 상 하나도 못 받았지만, 작가주의 감독이라는 이름도 아직 얻지 못했지만, 한 마디로 그 이름을 밝혀도 아무도 영화계의 아주 일부만 빼고는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감독의 영화예술에 대한 자긍심은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자긍심은 하늘을 찌르지만 물론 그 자긍심을 높이 치거나 심지어 구경이라도 하고 싶어 하는 자도 없었다. 그러나마나 감독은, 복권 탄 돈이 통장에 있고, 극도로 우월한 미모의 장화자와의 앞으로의 진행이 예상되어 있고, 여차하면 저예산으로 뭘 하나 찍을 수도 있는 환경이 확보되어 있어 마음은 부자였다.
은행에 들어 있는 복권 탄 돈을 조금 빼내 우선 원룸부터 청산하고 수도권 아파트 하나 전세로 들어간 다음 내부에 리모델링을 좀 해 영화감상이나 음악감상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든 다음, 장화자를 초청해 촛불이 있는 와인과 함께 아름다운 밤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잘 들어가셨어요? 오늘 고마웠어요.” 심야에 이런 문자가 하나 들어왔다. 장화자가 보낸 것으로 감독은 이 문자를 삼십번도 더 들여다보았다. 들여다보며 14자 속에 든 의미가 뭘까 생각하였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오늘의 고마움을 다음에 보답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었다. 그 보답이 어떤 형태로 제공될까 심히 궁금하였다. 그건 분명 돈이 들어가는 보답은 아닐 테고 그녀가 갖고 있는 그 우월한 몸매와 아름다운 미소를 활용한 것들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그 보답의 시기는? 멀지 않았으리라 보았다.
감독은 장롱 같은 데서 통장을 꺼내 동그라미 숫자를 세며 13억4천만원의 예금에 대한 명상에 들어갔다. 돈이 있는 명상. 이런 명상은 일찍이 어떤 선사도 해보지 못한 거라 스스로 독자적인 방법을 모색해 들어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