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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른 경주가 있다
장화자가 논현동 커피숍의 흡연실에서 담배 한 대를 빨고 있자니 만나기로 한 사내가 값나가 보이는 코트를 입고 커피숍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사내는 두리번거리더니 빈 의자에 가서 앉았다. 장화자는 이제 막 들어선 것처럼 녀석 앞으로 걸어갔다. 녀석은 눈이 부신 듯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녀석이 여자를 많이 만나고 다녀도 장화자 같은 여자를 만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었다. 거기다 성숙미가 더해져 농염함마저 풍기고 있으니 녀석은 숨이 멎을 것 같았을 것이다.
“에스프레소 마실게.” 장화자는 아메리카노를 시켜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놈이 계산하는 걸 보고 싶어 또 왠지 에스프레소 한 잔이 당겨 그렇게 말했다. 놈은 집사처럼 커피 두 잔을 들고 와 장화자를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피부 좋네.” 여자가 좋아하는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 늘어놓는 놈이었지만 지금의 말은 진심인 듯 했다. 남자의 진심은 언제나 여자를 움직이게 하는 법이다. “너도 보기 좋아.” 놈은 약간 살이 붙기는 했지만, 그럼으로써 젊은 나이에도 제법 풍채가 있어 보였고 요즘 돈 좀 벌고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돈 버는 건 좋은 일이었다. 특히 아는 사내가 버는 돈이라면 일정 부분은 항상 자신의 통장으로 이전을 시켜온 그녀였다. 놈은 보기 좋다는 말을 수시로 듣고 사는지 수긍한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요즘 어떻게 지내?” 놈이 물었다. 감독도 만나고 출연제의 오는 것들 고르고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전화로 언질을 줬을 텐데 새삼스럽게 물어왔다. “밖에 나올 일이 있으면 다른 일도 보고 가려 해. 논현동은 오랜만이네.”
그러니까 논현동을 보러 온 김에 너를 끼어서 본다는 말이었다. 사내들은 매달리는 여자를 뿌리치고 콧방귀 뀌는 여자는 쫓아다니니까. “좀 변했지. 업자들이 건물들을 가만 놔두지 않잖아.” 동문서답 같지만 놈은 제법 사업가다운 말을 했다. 무슨 시행 공사에 참여한다더니 대한민국 건물들에 다 간여하는 것 같았다.
“말은 안 찍어?” “뭘 찍어??” “옛날엔 경마장 가서 살았잖아.” “아.... 말을 찍는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경마에 관심 기울이고 있냐고 그렇게 물어야지.”
“그래. 관심 기울이고 있어?” “자주는 관심 못 주지. 간여하는 일들이 많으니까. 토 일요일엔 좀 방문해 보는 편이지. “어파피 토 일요일에 하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만 금요일엔 가급적 자제하지. 오늘처럼.”
오늘은 다른 경주가 있다는 소리로 들렸다. 놈은 장화자를 무슨 탐스러운 암말처럼 조련사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