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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이 들기 전에
왕년의 영화배우 장화자가 논현동의 커피숍에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 놓고 흡연실에서 담배를 한 대 빨고 있자니 먼저 와서 흡연 중이던 양복 차람의 두 사내가 그녀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30대로 보이는 두 사내는 인근 사무실에서 근무하다 티 타임을 가져보자 싶어 여기 와, 온 김에 담배나 실컷 피우고 가자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압도적인 미모의 30대 여인이 나타나 좋은 냄새를 풍기며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입과 눈이 함께 호강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장화자는 남자들의 그러한 시선은 10대 때부터 쉬지 않고 받아온 터라 아무 거리낌이 없었고, 오히려 눈이 삔 놈이 있어 그러한 시선을 던지지 않는다면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그 시선이 젊고 핸섬하고 부유해 보이는 사내의 것이라면 만족감은 더 켜졌다.
후줄그레한 노인의 끈적끈적한 시선이라면 언짢기는 해도 동정심 차원에서 허용했고, 좀 짓궂은 생각이 들면 가슴을 일부러 내민다거나 엉덩이를 강조해서 노인의 심장에 문제를 일으키게 하기도 했다. 남자들의 시선은 사실 단순해서 처리하기 어렵지 않았으나, 여자들의 시선은 매우 미묘하고 다양한 데다 때로는 질시를 넘어 표독스러운 기까지 뿜어 나오는데 그년들은 역시 기로 죽이거나 아예 무시해버리는 게 제일 좋았다. ‘아무리 쳐다 봐라. 니년들의 몸매가 나의 10분의 1이라도 따라오나’ 이런 깔보는 듯한 시선을 주고 그년들을 방치하면 제 풀에 꼬랑지를 내리고 사리지기 마련이었다.
물론 장화자도 몸매만으로 제압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때는 같은 조연이었다가 무슨 거지 같은 드라마 한 편으로 떠서 영화판의 러브 콜을 받고 있는 것 들을 보면 배알이 꼴리는데, 그년들은 몸매와 미모가 한참 빠지는데도 인기라는 후광을 업고 어디서나 포스를 발하는 것이다. 마치 가요프로에서 백댄서들을 달고 노래하는 가수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백댄서의 몸매가 아무리 좋고 춤이 멋있어도 시선은 그저 가수의 동작과 모습에만 박혀있기 마련인 것이다. 비록 몸이 왜소하고 미모가 시원찮아도 인기가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수렴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장화자는 자신의 뇌쇄적인 몸매와 뛰어난 미모가 더 나이 들어 시들기 전에 인기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크게 떠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려면 우선 돈 있어 보이는 사내들을 적극 공략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시 하기에 이르렀다. 담배 한 대가 다 재가 되기 전에, 만나기로 한 사내놈이 커피숍을 들어서는 게 보였다. 한 때 몇 번 품었던 놈이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