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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 사우나의 남녀공용휴게실에서 왕년의 조연배우 두 사람, 즉 장화자와 강호영이 밤 9시 넘어 방영하는 연예프로를 나란히 보고 있다는 것은 뭔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었다. 왜냐하면 성인남녀가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가정에서도 귀한 풍경인데, 보통 남자는 뉴스나 스포츠 그리고 여자는 드라마나 연예프로를 주로 보는 바 프로가 겹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남자들은 채널 선택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엔 전국노래자랑대회나 진품명품 같은 걸 온 식구가 모여 앉아 보곤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건 없고 성인 남자는 컴퓨터로 야구 중계를 봐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두 시간짜리 축구만 해도 몸서리가 나는데 세 시간도 더 걸리는 야구를 통째로 보겠다고 하면 여자들은 분노가 폭발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경우는 텔레비전을 본다기보다 나란히 앉아 서로를 느끼는 중이라고 봐야 했다. 텔레비전은 그저 소도구일 따름이었다. 강호영의 경우 여자와 대화를 하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로 때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던 것이다. 해서 영화가 좋은 건 여자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팝콘이라는 걸 먹느라고 쉴 새 없이 바스락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때론 사람보다는 사물이 내는 소리가 더 견딜 만 한 것이었다. 더 이상 대화를 안 한다고 해서 오늘의 목표인 밤을 함께 보내는 일이 무산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강호영은 장화자 역시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있었다. 뜨겁게 원하고 있다고 말이다.
“저 친구는 요즘 안 나오는 데가 없네.” 강호영이 요즘 들어 아무데나 얼굴을 내미는 연예인을 두고 한 마디 했다. 지나치게 입 다물고 있는 것도 부담을 주었다. “여자애들이 미친다 하잖아.” 장화자가 대꾸했다. 자신은 그 여자들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말투였다. 그러고서 다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간간이 팔이 닿고 장화자가 몸을 비틀면서 다리도 한 번씩 부딪쳤는데 느낌이 상당히 좋았다. 내일 경마장에 배팅할 돈 일부를 오늘 밤 모텔을 업그레이드 하는 데 좀 써도 아까지 않을 성싶었다. 그리고 내일은 첫 레인부터 딸 생각을 해야 했다. 찍어둔 말이 있었다. 왠지 감이 좋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장화자를 만나러 가면서도 감이 좋았다. 즉 이는 소득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게 돈이든 쾌감이든 뭐든 말이다. (다음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