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신사(24) - 이 강력한 마력은 어디에서?

↑	우영창(소설가, 시인)

  미국 본토 유학파 유세련이 송파구 육체파 마돈걸과 함께 강남의 한 와인 바에서 ‘메종’이라는 와인을 홀짝홀짝 마신지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났다. 비록 오늘 경마에서 돈은 잃었지만 이토록 아름답고 아련한 밤까지 잃어버리는 건 너무나 아쉽다고 마돈걸은 느끼고 있었다. 유세련 또한 요 며칠 주식에서 깨먹고 오늘 낮엔 슬롯머신에서 호주머니를 탈탈 털렸지만 마돈걸과 함께 하는 이 밤은 예외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30대의 두 성숙한 육체가 와인과 함께 하는 강남의 밤은 홀로 지새는 원룸의 밤이나 아는 인간끼리 떠들썩하게 마셔대는 동네 호프집의 밤과는 사뭇 다르다고 봐야 했다. 밤은 많지만 진정 아름다운 밤이 일생에 얼마나 되겠는가?
  한편 냉혹한 투자의 세계에서 잔인한 실패를 맛보고 삼거리 주막에서 한 잔 탁주로 시름을 달랜 우리의 주인공 백팔만은 당나귀를 타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백팔만은 당나귀 위에서, 한 잔 하시면 으레 길고도 천연덕스럽게 시조를 내뽑던 그 옛날의 아버지처럼 시를 한 수 읊기 시작했다. ‘코너를 달리는 말발굽소리 귀에 가득하고 승리의 함성과 아쉬운 탄성이 하늘 높이 울려 퍼지는 축제의 밤. 장부는 홀로 쓸쓸히 발길을 돌리누나. 이 밤을 호리병 차고 가다가다 지치면 내 쉬려니. 마돈걸아 너도 달려오려무나. 가슴에 이슬이 맺히도록 숨가쁘게 오려무나.’ 본인이 읊고도 어디선가 많이 듣던 가락이긴 했으나 어디 발표할 것도 아닌 이 시에서 백팔만은 분명 마돈걸을 간절히 찾고 있었다. 아쉬운 눈빛의 마돈걸을 두고 떠나온 자신의 무정함을 책망하며, 마돈걸의 외로움은 오늘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 하는 생각에 무거운 마음이 되었다. 진정한 그리움은 헤어진 뒤에 찾아오는가? 이러한 깨달음까지 무거운 화두가 되어 가슴에 매달려왔다. 물론 백팔만의 그리움엔 다소의 육욕이 내포해 있었다. 그것이 구체적인 형태로 떠오를 땐 엉덩이니 가슴이니 그런 거로 모양을 갖추었다.
  이러한 백팔만의 타오르는 그리움과는 상관없이 마돈걸은 숨막히는 살냄새로 유세련을 졸도 직전까지 몰아가고 있었다. 단지 옆자리로 옮겨 앉아 그녀의 허벅지에 가볍게 손을 얹고 머리를 부딪쳤다 떼었다, 금방 한 말까지 까먹어가며 뭐라고 계속 중얼대고만 있는데도 그런 지경이 되어 버렸으니 오늘 밤 마돈걸의 나신을 직접 확인하는 그 순간에는 천하의 유세련도 호흡을 계속 할 수 있을 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째서 마돈걸은 이토록 강력한 유혹과 마력을 뿜어낼 수 있는가? 그것은 투자의 비밀처럼 신비로운 것이었다. 계량화되지 않고 문서화될 수 없는 그런 매력이 여체 속엔, 특히 마돈걸의 육체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다음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