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욕실에서 씻고 있는 동안 여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가? 이런 적절한 질문에 대한 답이 구체적으로 나온 적이 있었던가? 그 반대의 경우는 허다한 것이, 사내들이 잘 되었다고 칭하는 모든 소설과 영화는 여자가 샤워하는 동안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이라기보다 상상을 하는지 문자와 영상으로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욕망의 대상을 여체에만 한정하는 건 대단히 폭 좁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특히 마돈걸처럼 ‘남녀 70세 부동석’ 이라고 생각하는, 젊은 육체에 대한 존중심을 갖고 있는 30대의 모던걸이라면 욕망의 상호교류 내지는 ‘합심고양’ 같은 진일보된 견해를 갖고 있기 마련인 것이다. 당연히 마돈걸은 거칠고 탄력있는 수말이 욕실에서 샤워하는 모습을 상세하게 떠올리고 있었다. 수말 유세련은 평소에도 ‘정신’ ‘영혼’ 이런 말보다는 ‘육체’ ‘뱃살’ 이런 유물론적인 말에 집착했는데 주로 샤워를 하면서 자신의 몸을 점검해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수시로 점검해보는 것이, 조금이라도 배가 나온 것 같다든가, 넓적다리의 탄력이 떨어진 것 같다든가, 성기가 발기하는 순간속도가 느려진 것 같다든가, 머리의 윤기가 덜하다든가 그런 것에 일일이 희비를 느끼며, 또 더 나은 몸에 대한 열정으로 가일층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하는 것이다. 오늘 유세련은, 보기 드물고 만나기 드물고 함께 침대에 눕는 일은 더욱 드문 마돈걸을 바로 곁에 두고 몸을 골고루 씻고 있었다. 그 동안, 이 모텔에 들어오고부터 성기는 한 번도 죽지 않았으니, 그것이 샤워 중에 쪼그라들 리는 만무했다. 유세련은 오직 전후의 강력하고 신속한 삽입으로 대사를 치루고 나자빠져서 담배를 빼어 무는 대한민국 평균 남성들과 약간 다른 면이 있었는데, 레이디를 자상하고 섬세하게 배려하는 미국에서 한 세월 보낸 탓인지, 남녀관계에 있어서도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과정에도 충실하려는 기특한 면모가 있었다. 해서 유세련은 계집처럼 충실하게 몸을 골고루 씻고 있는 것이다.
한편 마돈걸은 상상만 하고 있자니 좀 심심하고 미진해 직접 그 현장을 보기로 했다. 여자가 샤워할 때 남자가 욕실에 들어가는 건 문제가 좀 있지만 그 반대는 문제 될 것도 없고, 문제 된들 남녀가 뜨겁게 부딪치는 일밖에는 특별할 게 없었다. 유세련은 마침 얼굴에 비누를 칠하고 있다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마돈걸을 맞아들였다. 마돈걸은 세면대 앞에서 이를 닦으며 유세련을 곁눈질하였다. 이렇게 되자 유세련은 주인 마나님의 집에 세 들어 사는 고학생처럼 심리적으로 위축되었다. 거기다가 마돈걸이 그르렁거리며 치약 거품을 연이어 뱉어내자 유세련은 말을 훈련시키는 조련사와 그의 준비동작을 보는 것 같아 사뭇 두렵기까지 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