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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련은 베드에 바로 몸을 던질 만큼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베드는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보다 특별한 주인을 맞이하여, 베드도 긴장하며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9층 909호실 더블 베드는 마치 순결한 처녀처럼 떨고 있는 듯했다. 오늘 낮에만 해도 남녀 도합 170킬로그램의 숱한 육탄 공격에도 강력한 복원력을 자랑하며 버텨온 베드였다. 그러나 도합 130킬로그램 정도로 보이는 30대의 두 남녀 앞에서 베드는 힘이 아니라 오묘한 리듬으로 남은 시간을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한 차례 격렬한 키스식을 치른 유세련은 이번에는 선 채로 가볍게 입맞춤하였다. 대신 손으로 마돈걸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걸 잊지 않았다. 여자의 육체와 정신은 신호를 자주 보내줘야 훌륭하게 된다고 유세련은 믿고 있었다. 술이 오른 두 남녀가 곧장 파괴적인 행위에 몰입하지 않고 이토록 자제력을 발휘하여 전희를 치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둘 다 어지간한 프로가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909호 베드가 여기서 지내온 3년 8개월 동안 별의별 인간들을 다 봐 왔는데, 들어오자 말자 여자를 벽에다 폭풍처럼 밀어붙이고 바지를 광포하게 벗어 내리며 경련하는 놈, 깨끗하고 넓은 침대를 놔두고 진드기가 붙어있는 양탄자 위에서 뒹굴다 테이블 다리에 머리를 부딪쳐 아이야 소리 지르는 놈, 팔 삐었다고 우는 년, 처음부터 끝까지 욕실에만 있다가 몸이 퉁퉁 불어 나가는 것들, 여자는 내버려두고 성인채널만 감동적으로 시청하다 발길질 당하는 놈, 그리고 아기자기 신랑신부 흉내 내며 세 시간이나 내려가지 않는 젊은 여자 커플, 극히 일부분만 공개해도 그 정도였다. 언젠가 나 909호 더블베드가 모든 걸 증언하는 날이 올 것이다. 제군들은 그날을 기다려라!
마돈걸이 여자라고 샤워를 하는 동안 유세련은 창문을 열고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벗은 웃통을 내밀어 저 아래를 내다보자니 차들이 많이도 오가고 있었다. 짝을 찾지 못한 불쌍한 인간들도 오갔다. 뒤에는 물소리와 뿌연 김, 앞에는 도심의 불빛들과 어두운 하늘, 밑에는 불쌍한 것들. 유세련은 아랫도리가 발기한 채로 존재와 세계의 수수께끼를 마주하고 있었다. 유세련은 이렇게 가끔 철학을 하였다. 이때 뒤에서 무엇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것이 곧 뒤로 찰싹 달라붙기를 유세련은 기다렸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