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신사(49) -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	우영창(소설가, 시인)

  수상한 카페의 살찐 뱀 같은 마담은 스스로 ‘백수’라고 주장하며 껄껄 웃는 배 국장이 하나도 신비롭지 않았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깜짝 발표하거나, 마침내 정체가 드러날 때의 못내 자랑스러운 표정은 이미 예상하고 있는 바였다. 물론 ‘어머머’ 하며 작은(실은 무지막지한) 주먹으로 남자의 가슴을 친다든가, ‘그렇게 감쪽같이 속이는 게 어딨어요?’ 하며 째진 눈을 곱게 흘긴다든가,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이런 소박하고 조촐한 곳에 어인 행차시냐며 몸 둘 바를 몰라 한다든가,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함부로 옥체를 방기하시면 되냐고 넌지시 나무란다든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께서 아랫것들을 살피시듯 이토록 과감하게 평민의 하루살이 삶에 돋보기를 갖다 대시니 황감할 따름이라고 모가지를 팍 숙일 각오는 되어 있었다. 모가지가 길어야만 슬픈 짐승이냐, 굵고 튼튼해서 더 슬픈 짐승이 여기 있었다. 아무튼 뭐 하는 인간인지는 몰라도 한껏 처 줘도 회사에서 좀 높은 인간이거나, 교감이거나, 교수이거나, 무슨 연구위원이거나, 갈비집 사장이거나 뭐 그러한 종류의 인간으로 보였다. 술 마시는 폼이 과감하지 못하고, 말에 꼬리가 있는데다, 가슴을 훔쳐보는 시선이 정당하지 않고, 다리를 번갈아 떨고, 한 번씩 자기도 모르게 아부하는 웃음을 흘리는 인간이라면, 대기업 시이오나 국회의원이나 행정부 차관은 아니었다.
  이토록 사람을 꿰뚫어 보는 뱀 여인 앞에서 배삼지 국장은 술잔을 핥듯이 마시고 있었다. 술이 무슨 뱃전을 치는 잔물결 마냥 입술에 찰랑찰랑대기만 하고 속 시원히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주량이 약한 자들이 ‘난 이제 되었소.’하고 과감하게 선언하지 못하고 상대의 눈치를 볼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제 돈 주고 마시는데도, 승진 문제나 이권 관계도 없는 마담 앞에서까지 이러니 배삼지 국장의 평소 술자리에서의 언행을 알만 했다. 하긴 부하 직원 앞에서도 무슨 탄원서가 날아들지 몰라 미리 조심하며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는 인간이 배 국장이었다. 감히 국가와 국가의 주요 인사들을 헐뜯는 발언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이었다. 이름 세 자 앞에 차관을 다는 그날까지 몸조심 입조심, 행보를 알맞게 하여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가슴만 이토록 타들어가고 허한 것인가?
  살찐 뱀 같은 마담은 이러한 인간이 의외로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지갑이 열리고 또 열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고 있었다. 판공비라고 하는 그 쥐꼬리만한 돈 말고, 브이아이피 고객의 카드 한도라든가, 주식계좌의 예탁금이라든가, 퇴직 적립금이라든가, 뭐 그런 게 있지 않냐 이 말이다. 마담은 서빙하기 멀어 팔이 아프다는 이유로 배삼지 국장의 옆자리로 은근슬쩍 옮겨 앉았다. 살찐 허벅지를 가볍게 한 번 밀착시켜보자 배 국장의 빈약한 허벅지가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