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신사(48) - 살찐 뱀과 수수께끼 남자

↑	우영창(소설가, 시인)

배삼지 국장이 동네 어귀의 수상한 카페에서 양주를 앞에 놓고 살찐 뱀 같은 마담과 대화를 나눈 지 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치명적인 독을 품은, 살찐 뱀 같은 마담은 양주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자 ‘화장실 좀’ 하며 일어서더니, 살짝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며 화장실인지 어딘지를 향해 걸어갔다. 배삼지 국장은 크게 긴장했다. 어떻게 해서 마담이 하품을 다 하게 되었는지, 수치심과 함께 책임감을 느꼈다. 잠시 참을 수 있었을 터인데, 아니면 화장실로 가서 찢어져라 입을 벌릴 수도 있었을 터인데 들키란 듯이 조그마한 하품을 한 것은, 국장이 손님으로서 뭔가 성실하지 못했거나 손님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었다. 무엇보다 남자로서의 매력이 전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술집에서조차 남자의 매력을 남기지 못한다면 국장이 어디 가서 남자임을 과시할 수 있겠는가? 아내에게는 월급 외에는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인간으로, 아이들에게는 뉴스와 스포츠 중계로 휴일을 뭉개는 곤충으로 인식되고 있는 국장이, 아이돌 같은 짐승남은 아니더라도 고상한 품위와 은은한 매력을 풍기는 중년남의 인상을 남기는 일은 중요했다. 자존심과 관련된 것이기도 했고 살아가야 할 좋은 이유가 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마담은 화장실로 가서 시원하게 소변을 보고 거울에 대고 머리를 좀 매만지고 이빨에 뭐 낀 게 없나 잠시 살펴보았다. 질긴 오징어만 줄창 씹어댔더니 이빨이 고생한 것 같았다. 하품을 보여 줬으면 뭔 답이 있어야 할  것 아냐? 마담이 자리로 돌아갔더니 그 사이 답을 생각해냈는지 국장은 양주 소자를 하나 시키고 안주는 마담 좋아하는 걸로 하나 고르라고 했다. 마담은 꿀을 곁들인 수삼을 골랐다. 미용에도 좋고 사내한테도 뭐 어딘가에 좋겠지. 단가는 오징어 땅콩의 두 배에 해당하는 5만 원이었다. 그래봐야 워낙 물가가 올라 기껏 4만 원 남는 장사였다.
  “중요한 일 하는 남자들은 다 자기가 백수라고 하더라. 사장님도 백수라고 말해 놓으면 재미있어요?”
  살찐 뱀 같은 마담이 눈웃음치며 말했다.
  “메이커 양복 입고 계신 거 보니 높은 자리에 있으신가 보다.”하고 아까 마담이 운을 뗐을 때, “나? 백수지. 일자리 알아보느라 이렇게 빼입고 다닌다니까.” 하고 껄껄 웃으며 대답했던 것이다. 국장은 국장이라는 사실이 탄로 나기까지는 이렇게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남아 신비함을 더하는 걸 즐겼다. 그러니까 국장이 얼마나 높은 자리인지, 높으면서 고독한 자리인지 이 자리가 끝나기 전에는 마담이 알게 될 것이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