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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삼지 국장은 초혼을 부르짖는 김소월처럼 자기도 모르게 시를 뱉어내고 있었다. 이 시가 언어가 되어 흘러나오지는 않았지만, 노래가 되어 울려 퍼지지는 않았지만, 가슴 속에 고이고 차올라 세상에 공표되려 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 리 없는 마담 살찐 뱀은, 사내를 아쉬움이 가득한 관례화된 눈빛으로 배웅하고 있었다. 배웅의 시간이 좀 길었다고 생각하고 이제 그만 사내가 뒤로 돌아 앞으로 가서는 문을 열고 제 갈 길을 갔으면 싶었다. 그래야 영업이 끝난 자리에 털썩 앉아서 남은 수삼이랑 과일이랑 먹어 치우고 우렁차로 입을 씻고 담배 한 대를 빤 다음 받은 돈을 다시 한 번 열나게 세어볼 것이었다. 돈을 다시 세어보는 거야 상인의 의무이기도 하고 기쁨이기도 하며 앞으로의 가열찬 영업을 위한 각오를 다지는 행위이기도 했다. 해서 이 사내, 별안간 나타나 정신 나간 인간처럼 50만원도 더 써 제킨 이 자가 이제는 가주어야 했던 것이다.
배 국장은 말없이 서 있는 여인의 간절한 눈빛에서 ‘이제 가면 언제 오실 건가요?’ 하는 물음을 읽었다. ‘당신은 여길 떠나면 저 같은 건 잊어버리겠죠? 넓은 세상에서 많은 걸 보고 듣고 경험하며 살아가겠죠? 여인은 여기 이곳에서 시들어가겠죠? 햇볕을 못 받아 침으로 마른 혀를 적시며 그렇게 시들어가겠죠?’ 이 긴 이야기를 배 국장은 물음표까지 빼놓지 않고 듣고 있었다. 여인은 눈빛으로 말했지만 사내는 확답을 주었다. “어버이날도 문을 여시나?” 이것은 ‘다시 들를게’ ‘또 올게’ 같은 막연한 약속이 아니었다. “문을 열라면 열어야겠지요.” 이어지는 살찐 뱀의 대답은 위와 같았다.
남녀의 대화가 비록 영업을 매개로 하고 있지만 불과 두 어 시간 만에 이렇게 발전한 것이다. 공휴일에 뭔 영화를 보겠다고 장사를 하나? 쓸 만한 동네 남정네들이 여편네하고 애새끼들하고 돼지갈비 먹고 호프 때리는 어버이날에 말이다. 총각들이나 노인들은 와 봤자 돈도 안 되고, 하여 카페 문 닫고 본인은 휴식을 취하는 것이니 그대들은 ‘평소에 부지런히 들르시라’ 이거다. 그런데? 그런데 한 사내를 위해서 문을 열겠다는 이 발상, 특혜와 거래와 비리의 냄새가 나는 이 대답에 배 국장은 흥분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