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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만지면 느낌이 바로 오고 만지지 않아도 느낌이 시나브로 오고 있는 마담 ‘살찐 뱀’을 현장에 두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배삼지 국장의 가슴은 크게 쓰라렸다. 쓰라렸다기보다 아려왔다. 왜 우리는 만난 지 두어 시간 만에 헤어져야 하는가? 다정한 말이라고는, 봉사라고는 천 원어치도 안하는 여편네와는 밤새도록 한 집에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남편을 한 사람의 사내로, 자나 깨나 나라 일을 걱정하고 맡은 바 직무에 헌신하는 중요한 인물로, 신문을 읽고 월간 시사 잡지를 펼치는 선비로, 정해진 시일에 정해진 화폐를 내밀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막중한 책임자로 대우하지 못하고 무엇이 집에 들어왔나, 무엇이 집을 나갔나, 무엇이 돈이나 상품권을 가져왔나, 무엇이 술 냄새를 풍기며 찝쩍대나 하는 정도의 사정이라면 실로 이 집안의 기강이 어디 가고 그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배삼지 국장은 돈은 돈대로 썼건만 갈 데가 없는 미아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사내의 심정을 아는지 마담 ‘살찐 뱀’은 모든 계산을 천원 단위까지 다 치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는 허름한, 그러나 돈은 쓴 사내에게 기대듯이 하고 잠시 서 있었다. 작별의 아쉬움을 가슴 깊이 음미케 하려는 본능적인 몸짓이었으니, 이는 교태보다 은은하고 오래 가며 강력한 여운을 남기는 짓이었다. 배 국장은 살찐 뱀의 의외의 조선 시대 여염집 아낙네와 같은 자태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앉은 자리 내내 치솟는 욕망과 아랫도리의 외침으로 안달복달했던 자신을 꾸짖으며 이 여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과제에 대해 숙고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가슴에 불을 지르고, 그 가슴을 모닥불처럼 금방 꺼뜨려 재만 남기게 하는 게 아니라 화로처럼 은은하게 데우며 온기를 보존케 하는 이 기대오는 자태에 대해 배 국장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가슴으로 울며 서 있었다.
“가셔야죠.” 여인의 이 말은 사내를 다시 한 번 울렸다. 진정 가셔야겠냐보다 더 절절한, 이별의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어차피 가셔야 한다면 그대 나를 그만 울리고 떠나라는 강력한 항의와 원망과 체념이 뒤범벅된, 고통 없이는 되새길 수 없는 그런 말이었다. 배 국장은 그 말을 한 살찐 뱀의 붉은 입술과 그 속의 붉은 혀를 살피고 싶어졌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