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스쳐 지나가는, 도시 싱글남의 모습을 비춘 당신은 이제 하나의 인상을 도도녀에게 남기게 되었다. 남자라면 마트건 골목이건 우연히 부딪친 한 여인에 대해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지 않는 편이다. 순간적으로 성적인 자극을 받거나 뒤태가 어떤가 한 번 돌아보는 정도일 것이다. 아니면 ‘저 여자를 어디서 봤더라’ 고심하게 되는데, 너무 고심하지 말라. 동네서 오다가다 부딪친 얼굴일 뿐이다. 분명히 아는 얼굴인데 상대가 아는 척 해오지 않는다고 당황해 하지도 말라. 그녀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하키 선수이다. 아무튼 이러한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섬세하게도 한 남자를 가슴에 담아둔다. 멋있으면 멋있는 대로, 불쌍하면 불쌍한 대로 담아둔다. 따라서 그날따라 다소 초췌했다고, 얼굴이 창백했다고 고민하지 말라. 어떤 못된 년이 저 남자를 저토록 굶기고 속된 일로 고뇌하게 만드나 하고 사소한 분노를 품는 게 그녀 여자이다. 도도녀라는, 겉모습에서 찬바람이 부는 여자도 그러하냐고 물으면 대답은 ‘그렇다’이다. 겉은 차가워도 속에선 불길을 뿜는 게 또한 여자이며 불길은 질투의 불길, 연모의 불길, 동정의 불길, 분노의 불길 등 모양도 다양한데 색깔이 화려하고 좀체 꺼지지 않으며 너울대는 게 특징이라 하겠다. 기름이 자르르르 흐르는 얼굴과 지나치게 세련된 복장보다는 다소 창백하며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모습, 그리고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태도가 아닌 방심한 듯한 태도의 남자에게 끌리는 게 여자의 본성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이성을 봤을 때 남자처럼 강력한 성적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여자는 그 은은한 부드러운 관심을 가슴에 품는다. 불뚝 일어설 게 없는 반면 강물 흐르듯 소리 없이 깊어가는 느낌이 있다 하겠다. 그리하여 도도녀는 당신을 여자의 수많은 방들 중 하나에 담아두게 되었다. 여기서 그친다면 당신은 그 방에서 잠시 지내다가 서서히 잊힐 수가 있다. 물을 안 줘서 말라 죽을 수도 있다. 여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많다. 강력한 성적 호기심 대신 그것을 대체하는 수많은 대용품들이 여자 주변에 널려 있다. 미용, 패션, 드라마, 승용차, 여행, 음악, 뮤지컬, 라틴 댄스, 음식, 남자들 등 수많은 것들이 회전초밥처럼 여자의 주변을 돌고 돈다. 당신이 어떻게 특별한 남자로서, 주변의 모든 걸 대체할 만한 강력한 아이콘으로 그녀의 가슴에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는가?
제 3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때의 만남은 의표를 찌르는 것이어야 한다. 또다시 마트에서 부딪치거나 구멍가게나 분식집에서 맞닥뜨리지 말고 의외의 장소에서 전격적으로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도도녀가 큰 맘 먹고 화랑에 갔는데 거기 남자가 고독한 모습으로 조명빨을 받으며 한 점의 그림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여자는 이에 깊은 인상을 받는데 뭔가 신비의 아우라가 남자를 싸고도는 것을 느낀다. 물론 그 아우라는 여자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그물이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