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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다시 만난 그 남자, 여기에 무슨 섭리는 없을까 하고 또 생각해보는 게 우리 여자이다. 섭리는 아니고 우연, 아니면 계획적 접근이라고 봐야 하겠다.
자, 지나치게 배회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말자. 말한 대로 카트를 몰고 (이때 짐을 산더미처럼 실으면 안 된다. 그것은 대가족의 일원으로 비치게 하며 누군가를 부양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깔끔하게 싱글의 시선으로 고른 양질의 생필품, 그것으로 삼분의 일쯤 채운 카트를 몰고 무심히 그녀 곁을 지나 그녀의 시선이 카트에 떨어지게 한 다음 출구를 향해 카트의 머리를 돌리는 것이다. 주전부리 먹을 생각은 하지 마라. 여성은 누구나 막론하고(늙은 모친은 빼고) 남자들이 주전부리를 먹으며 돌아다니는 것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녀를 아는 척 할 필요가 없다. 눈이 부딪치더라도 긴가민가 하는 표정을 짓는 걸로 관심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도도녀는 남자에게 보다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 데 대해 자존심이 상해 있다. 이토록 도도하고 빵빵한 몸매와 반반한 얼굴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올이 푸린 추리닝을 입었다고 못 알아보는 건가? 그렇다면 어떻게든 나의 마력을 전달해야 되겠군, 뭐 그런 마음이다.
자, 남녀가 스쳐 지나간다. 카트의 머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틀어져 있다. 여인의 향기, 그리고 남자의 입김이 허공에서 교차한다. 시선은 부딪쳤다 떨어지고 풀어진다. 둘은 점점 멀어진다. 그들은 이제 멀리 떨어져 있다. 도도녀는 이제 좀 전의 여자가 아니다. 마음에 무엇이 하난 들어와 헤집고 있다. 눈에 뭐가 씌었으므로 별 볼일 없는 당신의 신체적 조건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인의 매력남은 실은 한 여인의 매력남보다 실속이 없는 법이다. 마치 입술을 도둑맞은 것처럼 당황해하는 여인을 보라. 여인은 당황을 내심 즐긴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