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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녀가 대형 마트에서 올이 풀린 추리닝을 입고 카트를 끌고 있다면, 그녀는 경계심을 완전히 푼 채 한가하고 느긋하게 소소한 행복을 주워 담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마트에 사내들이 나타난 것은 상당히 오래 된 바, 소위 신세대 부부들이 그 남녀동행 쇼핑의 원조였지만 이제는 청년 중년, 그리고 8순 어르신까지 이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사내들은 카트를 끌며 이곳저곳에서 주전부리를 한 점씩 맛보며, 빨리 따라 오라는 여인의 꽁무니를 쫓아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여인들은 여기 저기 다니며 물건을 들어 올려 자세히 살핀 다음 카트에 떨어뜨리는데 이 카트의 깊이와 넓이는 쌀가마니만 아니면 도합 수십 만 원대의 물건들은 쉽게 담게 되어 있다. 여인들은 지갑에서 신용카드 한 개와 포인트 카드 한 개 그리고 삼각 형태의 할인권을 제시함으로써 결제를 끝내는데 결제가 끝난 상품을 담은 카트를 남자로 하여금 차에까지 이동시키고 상품만 따로 들어 올려 차의 뒷좌석과 트렁크에 싣게 한다.
남자들이 이러하니 중년의 남자가 마트에 홀로 나타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고 그 남자는 가정적이면서 선진 의식을 갖춘 현대형 인물로 비치고 있다. 훤칠한 키에 값비싼 옷과 구두, 명품 시계를 하고 있다면 매우 주목을 받겠지만, 약간의 센스가 가미된 간편한 복장에 깔끔한 머리 스타일 정도만 하고 있어도 여성들의 은근한 호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보통 키에 평범한 얼굴, 기획 상품 셔츠에 할인권으로 산 금강구두를 신고 있다. 당신은 조용히 카트를 밀고 있다. 대각선 방향에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 도도녀가 보인다. 상품을 고르던 그녀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본다. 그것은 그녀의 오래된 습관이다.
도도녀로서 살아온 인생, 그녀의 주위엔 뭐가 항상 들끓었다. 사내이기도 했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금전이기도 했고 잡으려면 도망가는 행복이기도 했다. 오늘도 이 평온한 마트에 뭔가가 맴돌고 있다. 도도녀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