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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의 차원으로
때는 밤이었는데, 자칭 사업가인 강호영은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와 약 30분 전 모텔로 입장하였다. 벗지도 않고 ‘여자를 사랑해 본 적 있느냐’는 등 실없는 소리만 하던 장화자가 마침내 수건 두 장을 갖고 욕실로 입장한 후, 강호영은 침대에 알몸으로 누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축구를 보다가 당나귀 형님의 전화를 받고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당나귀 형님을 과천 경마장 화장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때 형님께선 힘없이 끊어지는 오줌 줄기를 뿜으셨고, 이후 마지막 레인까지 파한 후 어깨가 축 처진 채 경마장 광장을 걸어가며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싹싹 비는 것을 듣게 되면서 말을 붙이게 된 것인데, 사람에게 ‘괜찮으냐’고 물어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당나귀 형님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뭔가를 갖고 계셨다. 나중에 안 거지만, 당나귀 형님께선 진짜로 당나귀를 타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었다. ‘아 그 비쩍 마른 당나귀 타고 다니는 얼뻥한 사내’ 이것이 당나귀 형님을 묘사하는 한 여자의 증언이었다.
그때 “괜찮으십니까?” 하고 묻자 형님께선 슬픈 눈으로 강호영을 바라보았는바 어서 갈 길을 가시라는 눈빛이었다. 이렇게 되면 더욱 갈 수 없는 것이, 이 작자가 혹시 길 가다가 쓰러지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낯선 한 사내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자신이 매우 기특해서 강호영은 더 나아가 형님을 술집으로 모셨는데, 형님께선 슬픈 눈과는 달리 어찌나 잘 드시는지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강호영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굶었으면 또는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었으면 이렇게 허겁지겁 드실까. 이런 양반이 빚 독촉까지 받고 있으니 타는 속마음은 오죽 할까 하는 생각에 그만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 형님께선 구체적인 사연은 밝히지 않고 경마를 한 5년 정도 했다는 것과 경마에선 사실 손해를 본 거는 별로 없다. 다만 이런저런 사업실패로 기분도 전환할 겸 여기서 가끔 소일하는데 대부업자 전화는 집에 있건 화장실에 있건 경마장에 있건 그런 거 하고는 상관없이 아무데서나 울리는데, 마침 오늘 그 통화내용을 당신이 들은 거다 정도로만 말씀하셨다. 그 당나귀 형님이 오랜만에 전화를 해왔는데 내일 경마장에서 보자는 게 설마 돈 좀 빌려달라는 것은 아니겠지. 또 무슨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고 거기 투자하라고 하면, 지금 벌여놓은 게 100개는 된다고 대답하고 한 5년 후에 논의해보자 그렇게 말하리라 작정하였다.
이렇게 당나귀 형님을 회상하는 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장화자가 알몸에 대형수건을 두르고 욕실에서 돌아왔다. 모텔로 들어오는 여자들은 수건을 옷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장화자도 마찬가지였다. 잠시나마 강호영은 저 수건이 되고 싶었다. 해서 위로는 그녀의 탐스러운 가슴을 중간 부분에는 앙증맞은 배꼽을 좀 더 아래로는 그곳의 감촉을 살뜰하게 느끼고 싶었다.
“뭘 그렇게 봐?” 장화자가 눈을 흘겼는데 강호영은 보는 차원이 아니라 그 너머 느낌의 차원으로, 깊은 감각의 나라로 정신이 이미 이동해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