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신사(115) - 차나 마저 마시죠

↑	우영창(소설가, 시인)

  40대의 동영상 감독이 고대해와 찻집에 앉아 첫 남남을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저도 지하철을 타고 올 걸 그랬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는데 이는 그 말을 한 의도가 분명하지 않았다. 즉 술을 한 잔 마시면 좋겠는데 차를 갖고 와서 매우 아쉽다는 건지 `나도 이제 서민들과 함께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겪어나갈 작정이다`라고 선포하는 건지, `사실은 승용차를 타고 왔다. 우선 그 사실을 인지하고 차종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져달라` 그런 뜻인지 듣기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남기고 있었다. 특히 타고 온 차종까지 은근히 암시한다는 건 보통 상징적인 대사를 남긴 게 아니기에 40대 사내는 스스로도 자신의 말에 흡족해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대해가 보인 반응은 지하철이 탈선했다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들으라는 듯 지극히 덤덤했고, 그나마 엷은 미소를 띄어주어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들어주는 건 쉽지 않지만 니가 니 입으로 무슨 말을 못하겠냐는 그런 뉘앙스가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차 갖고 오셨나요?"
  이제 사내는 직접적으로 차에 대해 말을 꺼내기 시작했고 어떻게든 자기가 타고 온 차의 이름에 대해 발언할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듯했다 . "아니요." 고대해는 안 타고 왔기 때문에 아니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말을 이제 술을 한 잔 해도 된다, 당신이 가자는 대로 따라가도 된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내들이 많기에 이 사내도 그렇게 생각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잠시 겪어본 고대해의 성격으로 보아 그렇게까지 확대해석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이 여자는 말을 하면 그냥 그뿐 무슨 특별한 상징이나 비유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단순무식해서 좋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다른 말로는 명쾌하다는 거였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차 한 잔 하고 제가 좀 조용한 데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하고 능글맞은 대사를 읊었다. 이때 우리의 사내는 잠시 착각하였다. 평소의 신인배우들 꼬실 때 쓰던 그런 버릇이 그만 튀어나온 것이다.
  "차나 마저 마시죠." 이때의 고대해 반응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보통 여자 같으면 날 어떻게 보냐, 조용한 데는 무슨 얼어 죽을 조용한 데냐 할 수가 있는데, 또는 밥 사줄려고요? 난 비싼 거 아니면 안 먹는데 이런 식으로 나올 수도 있는데 차나 마저 마시자고 가볍게 응대하는 것이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