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신사(112) - 청담동에 사세요?

↑	우영창(소설가, 시인)

“동영상에도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40대 사내는 고대해가 덤덤하게 그 말을 받아들이자 의외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러한 발군의 여성은 결코 호들갑을 떨거나 갑자기 고무되어 이성을 잃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고대해는 수많은 남성의 판타지를 만족시켜주기 위해서만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대해가 모델로 나감으로써 그 남성잡지는 상당한 매출 신장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고대해는 지금까지의 어떤 모델과도 그 형태와 느낌과 아우라가 크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남성의 채워지지 않은 판타지, 그 부분을 제대로 채울 수 있는 모델이 필요했던 시기에 고대해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러한 고대해를 스틸 사진 만이 아니라 동영상에도 활용할 여지가 많다는 것은 전문가인 40대 남자, 모 프로덕션 대표가 재빨리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촬영 끝나고 약속이라도?” 40대 남자가 이렇게 문의를 하자 고대해는 “집으로 가야죠.” 하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집으로 간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나날이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가장 무난한 대답이면서 또한 인생사에 있어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냥 물러 설 남자는 아니었다. 그런 말에 그냥 돌아서는 건 시시한 사내들이 하는 짓으로 모름지기 사내라면 칼을 한 번 뺐으면 한 건 하고 봐야 하는 것이다. 하여 사내는 “댁이 혹시 청담동?” 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것이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청담동 또는 도곡동 또는 대치동 또는 삼성동 등 일단 강남권에 한하여 1차 질문을 던져 본 것이었다. 고대해는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청담동에 니 애인이라도 사냐 하는 표정을 짓고는 그냥 피식 웃으려다 “거긴 아닌데요.”하고 착실하게 대답하였다. 사내는 선뜻 다음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그럼 송파 쪽이든가요?” 하고 말했다. 강남에서 이젠 송파라 왜 그따위 질문을 던지는지 오리무중이었지만 고대해는 “결혼 청첩장이라도 보내려는 거냐?”하고 질문을 던지려다 말고 “송파는 제 동생이 살아요.” 하고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아, 그렇군요.” 이것이 남자의 반응이었다. “알겠습니다. 간단하게 차나 한 잔 하시죠. 모카 커피를 특별하게 하는 곳이 이 근처에 있습니다.” 하고 남자가 이어서 말했다. 여기에는 많은 유인 요소가 있었다. 우선 ‘간단하게’나 밥도 아닌 ‘차나 한 잔’으로 가벼움을 강조하며, ‘특별하게 하는 곳’이 있단 걸로 그냥 모시는 게 아니라는 느낌을 주며, 이 근처라고 말함으로써 가벼움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고대해는 미소를 지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