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신사(110) - 대세는 동영상

↑	우영창(소설가, 시인)

고대해가 다양한 포즈를 취해가며 소위 여체의 신비를 주제로 작품사진을 찍고 있을 때, 늦게 나타나 사죄라도 하듯 땀을 뻘뻘 흘리며 사진작가가 고대해 피사체를 두고 촬영에 여념이 없을 때, 가는 곳마다 조용히 이동하며 주시하는 자가 있다고 했으니 그는 40대 초반 사내였다. 선글라스를 벗어 윗주머니에 꽂은 그는 팔짱을 끼었다 풀었다 하면서 고대해를 예의주시 하였는데 그의 냉철하고 사려깊은 시선에는 고대해에 대한 단순한 궁금증이 아닌 뭔가 확신에 가까운 어떤 암시 같은 움직임이 있었다. 그는 이 여인에게서 지금까지의 많은 여성들에게서 발현된 것과는 다른 체취 다른 느낌을 받고 있었고, 그 느낌을 조용히 음미하고 있었다. 이때쯤 고대해도 사내의 존재를 의식하였다고 하였는데, 그가 벤츠를 주차장에 세워놓고 있다는 사실은 알 리가 없었다.
"잠간 쉬었다 하죠." 이 말은 사진작가가 고대해에게 한 것으로 체력이 고대해에 비해 많이 떨어지고 체격 또한 빈한한 자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물론 고대해도 이것이 작품사진 만 아니라면 벌써 때려치우고, 매점에서 시원한 팥빙수를 먹고 있을 터인데 작가와 작품에 대한 예의를 지키느라 지금까지 그 어렵고 심란한 작업을 군말 없이 수행해 온 것이었다. 그러나 예술이 강행군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적당한 휴식과 여유가 함께 할 때 그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고대해는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몸을 릴렉스 시키고 땀을 식히며 휴식을 취하였다. 이때 그때까지 주시만 하고 있던, 선글라스를 윗주머니에 꽂은 40대 사내가 고대해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저... 전 미래피 프로덕션의 김치열 대표라고 합니다. " 사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고대해는 `네?` 하고 반문하였다. 프로덕션은 알아듣겠는데 미래피는 또 뭔가?
"미래피 푸로덕션의 김치열입니다" 사내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자신의 신분을 입밖에 내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아, 네." 고대해는 순순히 응답했다. 이럴 경우 그런데요? 하고 싸가지 없게 대답하는 년들이 작금의 대한만국에는 부지기수였다. 상대가 신분을 밝혀왔으면 `그렇습니까? 그런데 저한테 볼 일이 있나요?` 이런 정도의 응대를 해야지 그런데요? 라든가 심하면 그래서요? 라든가  `어쩌라고요` 등 싸가지가 보통 심하지 않은 발언이 난무하는데 다 못 배우고 사랑을 못 받고 자란 탓이었다. 고대해는 그러한 싸가지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그냥 싸가지가 아니라 왕싸가지였기에 오히려 예의바르게 순순히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40대 사내는 옆의 사진작가를 흘낏 한 번 보더니 "동영상에도 잘 어울릴 것 같아 관심있게 보고 있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동영상이라? 그건 대세 아닌가? 드라마가 그거고 영화가 그거고 문제의 작품들도 다 그거 아닌가. 고대해는 미소를 감추고 담담한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동영상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마치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