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신사(109) - 주시하는 자가 있다

↑	우영창(소설가, 시인)

"여성 씨름단 주장, 도 대표 조정 선수, 재개발지대 여성 해결사 정도로 보이는 근육질의 압도적인 눈빛의 여성이, 피사체로 길게 서서 사진작가의 주문에 따라 다양하고 능동적인 동작을 취하고 있는 걸 지켜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상당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리고 뭔가 숙고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대해를 보고 있었는데, 고대해는 그 어떤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의 포즈를 취하며 말하자면 주위의 모든 시선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작업에 임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피사체는 오롯이 독립적인 형태의, 일견 프레임에 갇혀 있으면서 동시에 벗어나고 있는 그러한 형태를 취하고 있엇다. 40대 남자는 검은 선글라스를 벗고 잠시 고대해를 응시하며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라는 듯 했다.
그러나 촬영은 여기서 끝날 수 없었다. 사진작가는 고대해를 좀 더 배경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도록, 배경에 따라 피사체의 표정과 몸이 다양하게 연출될 수 있도록, 여러 정서적 반응이 나올 수 있도록 그녀를 나무나 연못이나 근정전으로, 매점과 화장실 근처만 빼고 여기저기 옮겨다니게 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40대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썼다 하며 그들 두사람 뒤를 쫒아다니는 건데, 나중엔 마치 본인이 피사체인양 자기도 모르게 포즈를 잡고 신경을 쓰는 것이었다. 이때쯤 고대해도 자신을 쫓아다니는 정체불명의 중년사내를 인식하였는 바, 평소에도 색다른 취향을 가진 자들이 상당수 관심을 보여오고 있기에 이 자 역시 그렇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선글라스를 썼다 벗었다, 윗주머니에 꽂았다 머리 위에 뒤집어썼다는 기본이고, 입에 물고 뱅뱅 돌리는 자부터 그걸로 등을 긁는 자까지 많이도 봐왔고, 결국은 그걸 어디 놓고 잊어버린다든가 해서 또는 불량품 티를 내느라 열에 녹아 흐물흐물해지거나 이음새가 벌어지거나 렌즈가 빛이 바래든가 해서 폐기처분하고 또 새 여자를 고르듯 새 선글라스를 쓰고는 이러한 곳에서 여성 눈앞에 검은 눈의 사나이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올 때도 그걸 지하철에서 쓰고 왔고 지하도에서도 썼고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매점 앞에도 서 있었던 것인데 지나가는 자들이 그 시커먼 자를 피해 가기도 했으나 여기 와서는 이제 고대해 앞에 제법 자세를 갖추고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글라스의 이동 경로를 명료히 알고 있는 고대해는 40대 남자가 조금 전 벤츠를 주차해놓고 잠시 사색을 하기 위해 여기 들렸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근데 벤츠를 타는 놈이 어디 한 둘이어야지. 보험금도 못 내는 놈들이 차는 벤츠를 몰고 다니는 게 또 이 바닥이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