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신사(119) - 소주나 한 잔 사요

↑	우영창(소설가, 시인)

제가 시간을 많이 뺏은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직접 집까지 모셔다 드리겠다는, 모 프로덕션 대표이자 동영상 제작자인 40대 남자의 제안은 고대해에게 전달은 되었지만 바로 수락되지는 않았다. 고대해는 그저 엷게 웃었을 따름으로 즉답을 하지 않았다. 이것만 해도 동영상 제작자에겐 희망이 비치는 일이었다. `됐고` 같은 소리를 내뱉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를 봐라,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남자의 진진한 제안이나 배려를 `됐고` 같은 싸가지 없는 말투로 무안을 주며 돼도 않은 불순한 쾌감을 얻고 있는가? `됐고`가 뭔가? 우리 고대해 언니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지만-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됐고` 같은 소리는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고대해는 그 웃음의 끝에서 미소를 날리듯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날렸다. `바래대 주실 것 까진 없고요.` 그리고 잠시 침묵 후 `소주나 한 잔 사세요.` 하고 `바래다` 보다 더 훌륭한 대답을 남겼다. 분명 술은 거절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마음이 갑자기 변했나.
여자의 마음이 갈대와 같고 조석으로 변한다 하지만 차 한 잔 하기도 전에 마음이 변해 소주를 마시겠다니?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주종을 정해 권하지 않았기에 아까는 거절했던 것인가? 아무튼 `소주나 한 잔`에서 전향적인 자세를 본 남자는 크게 웃음을 터트릴 뻔 했으나 기쁨을 참고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근데 안주는 어떤?" 이렇게 문의를 하였다. 소주엔 안주가 중요한데 많은 여성이 소주에도 주전부리 같은 또는 퓨전 음식 같은 걸 찾는데 고대해는 과연 어떤 안주를 찾을지 크게 궁금했다. 설마 순대는 아니겠지? "글쎄요. 이 근처에 한정식을 잘하는 데가 있던데.... 괜찮으세요?" 고대해가 한꺼번에 두 가지 말을하였다. 정보를 주면서 또 배려도 한 것이다. 괜찮으세요? 이 말은 안 하려면 안 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먹어주겠다는데, 시간을 공유하겠다는데 뭘 더 바래?` `내가 처먹고 싶은 거 먹으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센스 있게 `괜찮으세요?` 한 것이다. 고대해가 이외로 센스 있는 여자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나오는 이상 안 괜찮다고 할 남자가 누가 있겠는가? 물론 마누라라면 `그딴 거 동네 여편네들끼리나 먹고 낙지나 먹지` 또는 오래된 연인이라면 그냥 `딴 거 먹어` 이렇게 나올 수 있는데 첨 뵙는 숙녀 앞에서 거절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아 전 좋습니다. 그럼 그리로 가시죠." 말투도 가볍게 남자가 대답했다. 한정식이라면 뭐 이것저것 나오겠지? 수라상까진 아니어도 소주 한 잔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부족이 뭐야 소주 다섯병은 마시겠다. 남자는 이제 여자가 일어날 태세를 갖추길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