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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고대해에게서 그러한 구원자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침묵에서 위로를 받았다. “예술은 먼 길을 가는 낙타의 고행에 흔히 비견됩니다.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서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믿는 오아시스를 향해 타박타박 걸어가는 고행 말입니다.” 남자는 마치 사막을 걸어가는 한 마리의 고독한 낙타처럼 고독한 모습을 연출하며 고대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고대해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특별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낙타여. 가던 길을 가려무나, 그런 말을 말없이 하는 것 같았다.
남자는 머릿속으로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예술가의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예술과 상업적 성공에 대한 엇갈리는 생각을 쉬임없이 하고 있었다. 예술? 좋지. 허지만 관객도 없는 텅 빈 영화관에서 의미심장한 몸짓에 알아듣기 힘든 소리나 지껄이는 배우들을 내세워 뭘 추구하려는 건가. 추구해서 뭘 얻으려는 건가? 쥐꼬리만한 명성, 그리고 빚더미에 앉는 거. 개런티를 못 받은 배우들의 무거운 침묵과 그들의 가족들의 항의, 그런 걸 바라는 건가.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상업적 성공을 성취한 작품이 예술성이 없다고 누가 말하는가? 성공과 예술이 양립하지 않는다고 하는 건 실패한 자들의 한갓 변명에 불과하지 않는가? 나는 그 대열에 끼일 수 없다.
예술가로서 보기 드문 상업적 성공을 거둔 영화감독에 대해 메스컴은 얼마나 관대할 것인가. 그들은 많은 지면과 화면을 할애해 나를 조명하지 않겠는가. 나는 불룩한 지갑에 잔고가 가득한 카드를 넣고 오 만원 권 지폐를 수십 장 구겨넣고 약간 피곤한 목소리로 기자의 질문에 응답하지 않겠는가. 그때 그 자리에 고대해가 앉아 있다면, 주목받는 여배우로 떠오르는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조명된다면, 그리고 감독과 배우의 기막힌 조합, 성공의 신화 그 뒷이야기들, 그런 것들이 나열되며 두 사람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게 된다면? 아, 두 사람에 대한 온갖 추측성 가십이 떠돈다면? 그렇다면 두 사람의 운명은?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한 잔 드세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연 여배우 고대해의 멋지고 기름진 목소리였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