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신사(133) - 누구나 부족하죠

↑	우영창(소설가, 시인)

“제목이 좀 그렇네요.” 고대해가 입을 열어 한 말은 영화에 출연하겠다. 안 하겠다가 아니라 제목에 딴지를 거는 거였다. 동영상 감독은 고대해가 가타부타 다른 말없이 제목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곤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영화 출연에 대한 관심은 있다, 그러나 제목은 바꾸는 게 어떻겠나. 이런 뜻이 아니겠나 나름대로 정리하였다. 사실 제목은 매우 중요한데 개봉 시까지는 수시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개봉보단 본격적인 홍보가 시작되기 전 결정을 해야 하고, 그 제목으로 한 번 홍보가 나가면 그 제목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아직 본격 홍보단계는 아니므로 제목이야 수정할 여지가 있었다, 그런데 이 여자는   감독이 매우 고심하여 정한 이 제목 어디에 흠이 있다고 대뜸 제목 얘기를 들고 나오는 건가.
  “아, 제목이 좀... 무슨 떠오르는 좋은 제목이라도.....” “우선 누가 이 여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랴?가 기존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 따온 건 그렇다 치고 그냥 제목만 두고 봐도 좀 강압적이지 않나요?” “강압적이라고요?” “그러니까 굳이 그런 표현을 쓸 필요가 있나. 즉 여자가 강하다면 강한 걸 보여주면 되지 제목으로 강조하는 건 오히려 마이너스 아닌가 싶어서요.” “아,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군요. 하긴 햄릿이 복수극이지만 복수란 말이 제목으로 나오진 않죠,” “나와도 상관은 없죠, 좋은 감독이라면요.”
이 대목에서 동영상 감독은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다시피 했다. 바로 복수를 제목으로 쓴 유명감독 이름이 떠올랐고, 그 사람과 자기가 비교 당함에 따라 상당한 모멸감과 위축감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뇌가 뒤따랐기 때문이었다. 감독의 그런 반응을 보고 고대해는 ‘그런 뜻은 아니었다’라고 변명하거나 당황하는 표정은 짓지 않았다. 뭘 그리 힘들어하나 그런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 정도도 수용 못하나, 좀팽이 아닌가. 그런 뜻인데 감독은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렇죠. 제목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감독에 따라서 제목이 의미를 갖기도 있죠, 즉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시시한 제목도 의미가 있어보이듯 영화가 터지거나 감독이 유명하면 제목도 그럴싸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건 인정하겠습니다.” 이야기가 다소 옆으로 샌 감이 있었다. 고대해는 이 남자가 생각보다 예민하다는 걸 알아챘지만 불을 진화시키기 위해 팔을 내젓거나 서둘러 입을 열어 변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나 부족하죠. 예술 앞에서는요,” 이 한 마디가 감독을 크게 감흥시켰다. 감독의 입장과 체면을 생각해주고 거기다가 예술영화라는 월계관을 씌워주는 찰나였다. 과연 이 여자 보통이 아니다 싶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