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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오늘 여기 오기 전부터 차기작에 대한 구성으로 머리가 꽉 차 있었습니다. 머리도 식힐 겸 혹시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를까 해서 공원을 산책하게 된 거지요. 평소에도 공원에 자주 오시나요? 웬 걸요? 고궁을 찾아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는 게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현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각박한 세태 속에 뛰어다니다 보니 지척에 두고도 공원을 찾지 못하게 되더군요. 그러나 오늘은 저절로 발길이 자신도 의식 못하는 사이에 날 이리로 이끈 걸 보면 뭔가 섭리 같은 것이 게재되지 않았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하필 제가 오늘 여기 왔고 고대해 씨를 만나게 되었는지 그걸 신 외의 누가 알겠습니까? 고대해는 바쁘신 신이 왜 이 사람에게 유독 신경을 써 자신을 만나게 했는지 그 연유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꽤나 신파조로 나오고 있는 이 남자가 희극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막 되먹은 놈은 아니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었다.
“그러한 신의 의지와 배려로 느닷없이 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으니 바로 사진을 찍고 있는고대해씨였습니다. 저는 그 피사체에서 정적인 곳에서 뿜어나오는 아우라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동적으로 갔을 때 어떻게 변모할지 어떻게 표현될지 내심 궁금했습니다.”
말을 많이 하였는지 감독은 이 대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고대해는 표정 변화 없이 참 말도 길게 한다는 표정으로 감독을 바라보고 있었다. 본인 얘기를 하는데 딴청 피우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마지못해 듣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감독은 스스로의 언변에 고무되어 가삐 쉬는 숨을 진정시키고 있는 듯하였다. 고대해는 그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오.... 그림이 떠오른 겁니다. 놀라운 그림이요.” 점입가경이었다. 감독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서 진정을 시켜야 할 것 같았다. “고대해님, 그 순간 저는 결심했습니다. 고대해님과 함께 가기로요.” 고대해는 눈을 껌벅껌벅 하고 있었다. 뭘 함께 하자고?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