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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 40대 동영상 제작자와 모델 고대해는 오늘 처음 만난 사이로서 자리를 이동해가며 대화를 나눴지만 아직 그 단계, 즉 육신의 나눔 단계까지 무르익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고대해의 경우 처음 만난 남자에게 얼씨구나 자신을 맡길 여자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뭘 좀 얻어먹었다고 뭘 보상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경우 있는 여자가 아니었다. 제작자는 지금까지 상대해온 숱한 여자들이 경우 있게도 보답차 자신을 헌납하는 일에 익숙해 있었으므로 오늘도 기대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경우 오늘은 대단한 혈전이 되리라고 미리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밤이 제법 깊은 열 시반 경 두 사람은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시고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 차들이 곁을 지나갔으나 손을 들어 세우는 일은 하지 않았다. “댁이 어디십니까?” 이렇게 말한 것은 남자였다. 이렇게 점잖게 나오는 것은 바라다 주겠다는 것을 넘어 그만큼 배려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는 바라다 준다. 또는 택시에 태워 보낼 때 ‘무슨 동!’ 하고 외쳐준다 하는 의미였다. 남자의 이런 질문엔 대답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강동구에요” 고대해는 상당히 포괄적으로 대답하였다. 강동구라면 동만 해도 수십 개가 되는데 수수께끼라도 내는 듯 강동구만 말한 것이다. 이런 정보라면 우선 천호대교가 떠오르고 천호대교를 지나 여러 갈래로 뻗어가는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였다. 그 정도만 염두에 두고 둘은 다시 침묵에 휩싸인 채 잠자코 걸어갔다. 이런 침묵은 기대와 함께 두려움도 주는 법인데 고대해는 큰 부담이 없는 듯 가벼운 걸음걸이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야 할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여자의 뒷모습과 옆모습이었다. 둘은 분명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생리적인 현상으로도 알 수 있는 문제였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