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신사(143) - 주로 낮에 운전하시나 봐요

↑	우영창(소설가, 시인)

40대의 동영상 제작자는 모델 고대해의 “라디오를 들을 땐 눈을 감는 편인가요” 이러한 질문을 “키스를 할 땐 눈을 감는 편인가요?”로 바꿔 듣고는 마음속으로 “키스를 원하나?” 이렇게 물었다. 물론 입으로는 “운전 중일 때는 눈을 뜨는 편입니다.” 하고 말했다. 이 농담에 스스로 흡족해서 하하 하고 한바탕 웃어 제키기까지 했다. 고대해가 미소를 지어 주었으므로 이러한 유머 차원의 발언을 구사한 자신이 매우 대견스러웠다. 어떻게 그런 유머가 나왔는지 자신의 잠재된 역량에 대해 검토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주로 낮에 운전하시나 봐요.“ 이어서 나온 고대해의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것은 그냥 하는 농담이 아니었다. 그의 유머에 유머로 맞서면서 ‘밤에는 운전을 잘 안 하느냐는’ 즉, 운전이 꼭 차에 국한될 필요가 있느냐는, 쉽게 말해서 여자 운전은 안하냐는 그러한 물음이 숨어 있었다. 이 이중적인 의미를 하나의 문장에 담아내는 고대해의 센스에 남자는 적잖이 놀랐다. 이 여자를 주연여배우 뿐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즉시 떠올랐다. 고대해는 여자 운전 따윈 결코 생각도 안 해봤지만 남자는 그녀 발언의 의미를 쉽게 국한시킬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성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라디오를 들을 땐 눈을 감는 편이가요? ’ ‘주로 낮에 운전하시나 봐요.’ 이 두 가지를 연결시켜 보면서 남자는 화들짝 놀라는 척하며 “무슨 말씀이신지” 정색하고 물어봤던 것이다.
농담을 정색으로 받을 땐 어떤 의미가 도사리고 있기 십상이다. 농담을 계속 농담으로 받아들이면 결국은 피곤해질 뿐 아니라 신중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그리고 뭔가 실질적인 일은 획책하지 못하는 인간이구나 하는 실망을 안겨주기 쉽다. 그래서 그러한 성적인 농담은 그만 접어주십사 하고 가벼운 항의를 하는 느낌으로 정색하고 말한 것이다. “아니에요.” 고대해는 가볍게 대답했다. 신경 쓰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이때 남자의 머릿속에는 ‘주로 낮에 운전하시나 봐요’는 결국 낮에 주로 여자를 만나 몸을 푸느냐는 의미로 갑자기 다가왔다. 무서운 농담을 던진 것이다. 너 바람둥이지? 이 말을 돌려서 한 것이다. 아아, 그걸 왜 몰랐던가? 아무튼 정색하고 말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우리 농담으로 이어가지 말고 본격적으로 이 시간 이후의 일을 생각해보자는 제의로 그녀가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와인 바에서 와인 한 병 마시고 음악 좀 들었으면 되었지, 계속 앉아 있을 순 없지 않느냐? 우리가 어디론가 이동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런 의미였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