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바 ‘달빛 소나타’에서의 시간도 바야흐로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샹송을 부르는 작은 무대가 있고, 은은한 조명이 깔린 실내와 와인이 있는 나무 탁자가 있었다. 이 자리는 탁자를 사이로 두 남녀가, 그것도 묵은 관계가 아닌 갓 만난 30대 여성과 40대 초반 남성이 있는 결코 예사 자리가 아니었다. 실로 인생에 이런 자리가 많은 건 아니었다. 물론 동영상 제작자의 경우 뻔질나게 많은 만남과 작업과 결실들이 있어왔지만, 그것들이 모두 오늘과 같은 흥분과 기대감과 설렘과 안타까움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상대의 영혼의 빛깔과 육신의 형태에 따라 남자의 마음은 매우 달라지는 것이었다, 오늘은, 베테랑이라고 알려진 다른 말로 바람둥이라고 알려진 동영상제작자가 그 동안의 수법을 버리고 겸손하고도 공경하는 마음으로 여성을 대하는 자리이며, 이렇게 공을 들이고 자기를 낮추는 시간들이 결코 허튼 시간이 아닌, 앞으로의 만족과 환희를 위해서 곡 필요한 시간들이라고 자처하고 있었다. 모델 고대해 역시 보통 여자와는 달리 팜므파탈 중에서도 상여자라고 할 만한 인물이었으나, 때에 따라선 자신을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음악의 선율에 실려 그저 흘러가고픈 심정이 드는 날이 있었다. 아니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곤 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가히 신이 허락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고대해가 자신도 모르게 유혹의 얼굴빛과 눈빛을 하고 육신을 약간 움직여 뭔가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음은, 꼭 그 자신의 의도가 아니라 여성 본연의 내면의 욕구에 의해 이뤄진 거라고 할 수 있었다.
“라디오를 들을 땐 눈을 감는 편인가요?” 참으로 기습적인 질문이었다. 남자가 라디오를 자주 듣는다고 말을 하자 그러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나온 것이다. 남자는 이 질문이 무슨 뜻인지 잠시 머리를 초고속으로 굴려봤으나 그 뉘앙스만이 묘한 물결을 일으킬 뿐 숨은 의도는 결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키스를 할 땐 눈을 감는 편인가요? ’이러한 질문으로 바꿔 듣고 있었다. 그거라면 정확하게 대답할 자신이 있었다. ‘반은 감고 반은 뜨고 있는데, 감아도 뜬 듯 떠도 감은 듯하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또한 남자는 ‘지금 이 여자는 이 자리에서 바로 키스를 해주길 원하는 걸까?’ 이런 가슴 뛰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