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신사(140) - 음악 좋아하십니까?

↑	우영창(소설가, 시인)

와인 바 월광 소나타에서 동영상 제작자인 남자와 모델 고대해는 밤 8시 반 무렵에 쓴 맛 나는 와인 한 병을 시켜놓고, 서로 마주보다가 가끔은 고개를 돌려 자그마한 무대 위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노래를 읊고 있는 여가수에게도 눈길을 주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정식 집에서 코스 음식을 먹은 남녀가 배가 어느 정도 부른 상태에서, 빚 독촉이나 빨리 오지 못하겠냐는 성가신 전화도 없는 고요한 시간의 와중에, 이러한 부드럽고 몽환 적인 색채가 배어 있는 시간의 물결 위에 떠 있으니 누가 봐도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숱한 남녀가 데이트라는 이름하에 이러한 시간을 보내고 있고-물론 연애기간이 오래 되면 그러한 과정은 완전히 생략된 채 밥 먹자마자 본 게임에 들어가거나 아님 차나 한 잔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바쁘게 되기 마련이지만- 그들은 감정이 고조되어갈수록 상대방에 대해 터무니없이 낭만적으로 생각하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동영상 제작자가 본 고대해는 그러한 일반적인 경우와는 많이 다른, 좀체 흔들릴 것 같지 않은 해서 더욱 알고 싶어지는 그러한 여성상이었다.
“음악 좋아하십니까?” 남자는 그렇게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은 마누라에게도 할 수 없는 것으로- 니, 음악 좋아하나 하고 물어봤자 미치도록 좋아한다 어쩔래 같은 대답이나 들으면 다행이다- 적어도 질문이라면 90년 대 이후의 재즈의 흐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는 클래식의 최근 경향은 다시 복고적인 세계로의 귀환을 꿈꾸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적어도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상대의 성실한 답변을 기다리는 게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허나 남자는 보다 색다른 화두를 던졌다. “라디오를 자주 듣다 보니 가끔은 무대가 그리워지더군요. 여긴 작은 무대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게 다가오기도 하는군요.” 사실 이런 낯간지러운 대사는 드라마에서도 퇴출되고 있는 상황인데 남자는 태연히 읊고 있었다. 잠시 상대가 누군지 깜박 잊고 예전에 작업해오던 그 방식 그대로 한 번 읊어 본 것이다. 다행히 이때 고대해는 남자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생각을 잠시 하느라 라디오, 무대 정도만 알아들었고 소중이니 어쩌니 하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녀는 집에 갈 때 교통카드를 충전해야 하나, 충전한다면 지하도 화장실부터 다녀온 다음에 할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답이라고 ‘아, 네’ 하고 말았고 남자는 이러한 멘트는 역시 순기능이 많다고 흡족하게 여겼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