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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욕구로 말하자면 남자에겐 성욕의 해소가 우선순위인 반면, 여자인 고대해는 - 비록 그 모양새는 열 남자 저리 가라 할 만큼 파워풀하지만- 여자이다 보니 분위기에 좀 젖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분위기에 젖어 멜랑꼬리해지는 것보다 그 분위기가 그녀와 사내 앞이나 뒤나 위나 아래 또는 둘 사이로 흐르게 내버려두고 싶은 심정이 좀 있었다. 남자 또한 곧장 베드가 있는 곳으로 여자를 끌고 간다는 건 미친년이나 애인이 아닌 이상 가당치 않은 일임을 깨닫고 이제 10미터만 가면 나타나는 와인 바, 많은 여자들이 발그레해진 뺨으로 그를 예술가로 예술가인 남자로 새롭게 바라보았던 그곳으로 발길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와인바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고 “저어기. 여기 음악이 괜찮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하고 마치 음악에 대해 상당한 애정을 갖춘 사람처럼 말하였다. 고대해는 ‘월광 소나타’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그야말로 달빛처럼 몽롱한 기운이 흐르는 그곳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괜찮아 보이는데요.” 고대해도 한 마디 하였다. 그들은 와인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고도 와인 바로 들어갔다. 그곳은 지하였으며 과연 달빛이 지하에까지 스며들어 한정된 공간을 부드럽게 채우고 있는 듯하였다.
그들은 주인인 듯한 꽁지머리 남자의 안내로 은은한 조명이 흐르는 나무 탁자로 안내받았다. 탁자는 마치 바로크 시대의 예술가들이 앉았음직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여기 앉는 사람들은 누구나 순식간에 예술 언저리로 안내받는 듯하였다. 주인이 메뉴판을 갖고 와 그들 사이에 놓자. 남자는 고대해에게 그것을 펼쳐서 보라고 건네며 “고르시죠.” 하고 한 마디 하였다. 고대해는 와인에 대해서 안다면 안다고 할 수 있고, 모른다면 모른다고 할 수 있었다. 메독 같은 이름은 들어 알고 있으나 엄밀히 말해서 이름별로 그 맛을 제대로 구분해낸다고 할 수 없었다. 다만 본인이 약간 쓴 맛을 좋아한다고 알고 있었고 쓴 맛이라고 추천해 준 와인을 한 번 먹어본 결과 몸에 맞는 느낌을 가진 바 있었다. 고대해는 그 와인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대해가 그저 “쓴 맛 나는 와인요.” 하고 말하자 남자가 좀 놀란 듯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