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자리를 옮길까요?” 두 남녀 사이에 있어서 이러한 제안이 남자의 입에서 나왔다면 우리는 그 말의 진의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그 제안이 식사 후에 나온 것이라면 더욱 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차나 한 잔 할까요?’ 라든가 ‘바라다 드리겠습니다.’와 같은 건전하고 명확한 의사 표명이 아닌 다만 ‘자리를 옮기자’라면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남자들끼리라면 식사 후에 호프집이나 때론 카페 때론 노래방 때론 룸살롱 등으로 이어지며 이미 든든해진 뱃속에 상당한 에너지를 장착하고 그러한 곳들에서 칼로리를 유용하게 소비한다고 볼 수 있다. 남자들은 가는 장소에 따라 남자들끼리만 있는 걸 감사하게도 여기는데, 1종 영업장소에 여자를 데려간다는 건 해당 영업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그곳을 일터로 삼아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많은 여성들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데려간 여자가 뭘 해야 하는가? 과일을 깎게 할 수도, 대놓고 신체 접촉을 할 수도, 그렇다고 야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그래서 이도저도 아닌 뒤죽박죽 술자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영업점에서 술값을 깎아주는 것도 아니어서, 남자들이 이러한 곳에서 쓰는 돈의 액수에 대해서 동행한 여자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녀들이 가방과 의상과 유기농 화장품에 퍼붓는 돈에 대해 이해가 안 되는 남자가 대다수라는 건 남녀의 서로에 대한 몰이해라기보다 서로가 영원히 다른 데서 오는 건전한 차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한 것들이 서로를 증오하면서도 사랑하게 되는 특별한 효과를 낳고 있다 하겠다.
아무튼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자리를 옮길 것을 권유하였을 때 ‘어디 또 가시게요? ’하고 물은 고대해의 직설법은 남자로 하여금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여기 한정식집에 오기 전에 차를 이미 한 잔 하였고, 여기서도 후식이라고 식혜 같은 걸 내왔기 때문에 또 다시 차를 마시자는 건 뭔가 순서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럴 경우에 그러거나 말거나 바로 모텔로 가게 되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만 그런 행운은 기대하지 않는 게 정상적인 생각이라 하겠다. 해서 와인 같은 거로 음악을 곁들여 자리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분위기에 젖어 그 다음 코스도 어느 정도 예견이 되는 것이다. “일단 여기서 나가시죠.” 그야 나가지 안 가겠다고 버티기라도 한다는 건가. 고대해는 말없이 남자를 따라나섰다. 돈도 내는데 그 정도는 말하게 내버려두는 게 좋을 것이다. 남자는 생각이 있었다. 여길 나서 30미터만 가면 와인 바가 하나 있고 거기서 많은 여자들이 발그레해진 뺨으로 그를 예술가로 새롭게 보지 않았던가.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