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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를 만나기 전에
복권에 당첨된 환상을 가진 40대 동영상 제작자가 당첨 이후의 자신의 행적에 대해 꾸는 꿈은 아무리 길고 아무리 자세해도 질리지가 않았다. 아니 자세할수록 길수록 사내는 구체적인 행복감을 맛보며 그 황홀한 도취 속에서 깨어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주머니에 돈을 잔뜩 챙긴 그가 머리에 떠오르는 순서대로 전화를 해보자 미나라는 아이가 받았고 이 신인 여배우의 도착을 기다리며 잠시 전시장에서 그림 감상을 하고 있었는 바, 배우의 도착이 가까워지면서 더 이상 여기서 눈 아프게 그림을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물론 동영상에 필요한 소품으로 여기 그림 한 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또는 꽃이나 나무가 많이 들어간 그림의 성격으로 보건대 통째로 5분여 찍어 남녀 주인공이 그림을 보며 예술적 대화라든가 숲 속의 데이트를 꿈꾸게 한다든가 하는 설정을 갖게 하는 것은 유효했다. 이것이 동영상 제작자가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헌팅 본능이요. 예술적 심미안이라고 하겠다. 허나 지금은 미나가 올 시간이었다.
미나가 누구냐? 3년 전에 그의 동영상에 혜성과 같이 등장한 27세의 신인 여배우로 일찍이 모델계에서도 그 이름이 회원 명단에 올라가 있고 밤 11시에 틀어주는 독립영화에도 그 얼굴이 한 번 비쳤으며 비록 무산되었지만 종편 드라마 ‘청춘 만만세’ 제작팀과도 수차례 접촉을 가져온 바 있는 전도 유망한 여배우였다. 신체조건으로 말하자면 얼굴은 토끼과에 속하며 바디는 60년대 미스코리아 스타일을 추종하고 있었다. 즉 아담하고 통통하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특징의 여성은 키가 크고 글래머인 여성들에 비해 주위의 시선을 덜 끄는 바 어디를 데리고 다녀도 어디에 함께 앉아 있어도 주위의 시선 때문에 크게 신경 쓸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씩 안고 싶은 욕구를 일으키며 그냥 둬도 앙증맞은 느낌이 여간 흡족한 게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체형에 맞게 말도 귀엽게 풀 뜯어먹는 소리로 하는 바 듣고 있어도 그다지 지루함이 없다는 게 또 하나의 특징이었다. 또한 한 끼 식사는 물론 차 한 잔을 마셔도 반드시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미나가 미울 리 없었다. 그러한 미나가 이제 곧 도착하니 복권에 당첨된 남자는 복권 당첨 사실을 감추고 있다는 데 무한한 기쁨을 느끼며 화장실로 가 몸을 가볍게 하고 또 용모를 살피며 남은 시간을 흘러가게 하여 도착시간과 맞추어 약속장소로 걸어갔다. 남자는 미나와 저녁을 먹고 그 다음에 뭘 할까 하는 걸 아직 구체적으로 짜지는 않았다. 미나와 함께 있으면 어떤 기분이 날지 그 기분에 따라 오늘의 프로그램이 달라질 수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