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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심정을 알아가며
복권에 당첨된 꿈을 꾼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당첨된 이후의 자신의 행적에 대해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있는 바 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아침부터 구두를 닦고 아점으로 양평 해장국을 먹고 편의점에 가 복권 두 장을 구입하고 슬슬 거닐다 업계 사람 하나를 만나 자금사정이 절박한 그와는 달리 한가한 마음으로 그의 지루한 이야기를 들은 다음 찻값을 내주고 헤어져 이제는 저녁을 함께 할 사람을 구하는 바 상대는 남자나 여자나 여대생이나 상관없다고 하였다.
그렇게 해서 복권에 당첨된 남자는 요 근래 머리에 잔상이 지워지지 않는 여배우 한 사람을 떠올리고는 어머니-가슴이 푸근해 보여 어머니라고 붙여놓았다. 생모는 마더로 저장되어 있었다- 라고 되어 있는 이름을 누르고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 하늘이 비가 올 것 같네요. 그동안 적적했습니다. 저녁이라도 대접하며 사는 이야기나 나누었으면 싶습니다만,....’ 점점점으로 여운을 남긴 그는 10분 안에 답장이 없으면 이 다음 머리에 떠오르는 여배우에게 문자를 보내리라 작정하였다. 답신은 약 5분 후에 왔다.
‘어머 감독님... 거긴 흐린가 봐요. 여긴 하늘이 그림물감처럼 파란데. 저도 오랜만에 흐린 하늘 아래서 감독님을 뵙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감독님 어디로 가면 될까요?’
여기도 하늘이 흐리지는 않았다. 그냥 그렇게 보낸 거였다. 여자에겐 뭔가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했고 그런 게 없으면 만들어 내면 되는 것이었다.
남자는 이제 여자가 택시를 타고 달려오건 전철을 타고 오건 한 시간 반 정도의 여유를 갖고 그 여유를 좀더 알차게 보내기 위해 인근 전시장을 찾았다. 주머니에 만원 권 100장과 5만원 60장이 있고 일일 한도 5백만원의 체크 카드도 있는 바, 돈이 이렇게 있으니 굳이 돈 쓸 일도 없고 안 써도 아쉬운 게 없었다. 참으로 돈 있는 이의 심정을 가슴깊이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가 지금 보고 있는 건, 어디 특선이며 입선이며 전람회며 초청전시며 그 이력이 상당히 긴 중견 화가의 전시회였는 바 입장료가 없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주머니와 통장에 돈이 많아도- 그는 복권 실수령금을 세금 제하고 13억5천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공짜라면 역시 흐뭇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는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며 그 색감과 양감과 원근에 대해 나름대로 예술적 판단을 했고 그 다음에 그림 한 점의 가격에 대해 궁금증을 가져보았다. 그림이 팔렸다는 표시인 빨간 리본이 총 세 군데에 붙어 있었는 바 책 사재기처럼 화랑에서 지 마음대로 붙인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남자는 하품을 하며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여배우 미나가 이 근처 커피숍에 도착하기 15분 전이었다. 가슴이 푸근한 ‘어머니’가 오는 것이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