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그리하여 이 남자가 주머니에 5만원권 60장과 만원권 100장 한 묶음을 넣고 일일 한도 오백만원의 체크카드를 소지하고 길을 나서서는 거리에서 구두를 닦고 양평 해장국 같은 전문 음식점에서 아침 겸 점심을 드시고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 유유히 걸어가다 복권 세 장을 사고 그 다음 편의점에 들러 광동탕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온실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천원짜리 복권 두 장을 또다시 구매하니 그 연속된 구매 형태가 운보다는 성실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하겠다. 설마 복권이 두 번 세 번 연속 당첨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만, 복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구매의 대열에 동참하는 과정을 생략할 수가 없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또 다른 당첨 시한폭탄을 몸에 두른 남자는 특별한 목적지 없이 슬슬 산책을 하는 바 아무도 그의 행로를 가로막는 자나 일이 없다 하겠다. 그리고 그는 12시부터 저녁 시간이 다가오는 6시까지 무엇인가 하고 또는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낸다. 또는 관련 업자라도 한 사람 만나 요즘 힘들어 죽겠다는 소리를 고개를 끄덕여가며 들으며 업계에 어떤 아이템들이 돌아다니는지 어떤 저렴한 배우가 있는지 어떤 제작자가 출연료 미지급문제로 도망다니고 있는지 등을 알아본 다음 -복권 당첨 사실을 밝힐 아무 이유가 없으므로- 이 업계가 언제는 힘들지 않았느냐 그래도 전진하는 게 우리의 운명 아니냐 같은 말을 하고 그러나 커피값은 성큼성큼 걸어가서 내줌으로써 상대에게 작은 감사의 느낌을 갖게 하고 커피집 앞에서 악수를 나누고 이제는 저녁을 함께할 사람을 구해보는 것이다. 그 사람은 여자라도 좋고 남자라도 좋고 또래라도 좋고 후배라도 좋고 선배라도 좋고 여대생이라도 상관없었다. 오래 전 잠시라도 스친 사람 얼굴을 떠올린 다음 웬지 잔상이 남는 그 사람에게 문자를 한 번 남겨보는 것이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