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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 당첨금 받으러 가는 길에 웃으면서 산 복권이
우리는 복권에 당첨된, 말하자면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가정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즐겨 상상하는 한 대목을 보고 있다. 그는 주머니에 5만원 권 60장과 만 원 권 100장 그리고 분실 위험 때문에 일일 한도를 5백만 원으로 설정해놓은 체크카드를 넣고 길거리에서 구두를 닦은 다음 전문 음식점을 향해 아침겸 점심을 하러 걸어가고 있었다. 소위 여자들이 말하는 `브런치`라는 건데 그녀들은 그것을 장소와 밀접하게 엮어 예쁘고 세련되고 원두커피가 따라 나오는 그런 곳을 `브런치 식당`이라고 하는 반면 우리의 대한민국 남자는 해장국, 설렁탕, 콩나물 국밥, 북어국, 김치찌개, 좀 더 나아가면 15,000원 이하의 `참치정식` 정도를 아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식사 시간대가 중요한데 룸펜은 절대로 11시 50분에서 1시 10분까지는 식당을 피하는 것이었다. 혼자 눈치 보며 먹을 필요가 있는가, 시간도 넉넉한데. 그러니 우선 손님들이 들이닥치는 12시엔 이미 식사를 끝내고 유유히 식당을 빠져나가게 되니 배고픈 자들이 남녀불문 아귀처럼 음식에 달라붙을 때 이미 부른 배를 하고서 커피 한 잔을 뽑아 어디선가 선 채로 마시고 있는 것이다. 물론 커피 전문점에 가서 마셔도 되지만 일단 음식점이 제공하는 1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손에 들고 유유히 나서는 것이 남 보기에도 좋고 입안을 휑구는 효과까지 겹쳐 적잖은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이리하여 커피로 입가심을 한 남자는 다음 행선지를 특별히 정해놓은 데 없이- 정해놓으면 걸음이 빨라지고 제약을 받으니-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자는 웃으면서 길가에서 복권 세 장을 사고 - 복권당첨금 찾으러 가는 길에 산 복권이 또 당첨되었다는 토픽을 보고 고무되어서라기보다- 이제는 복권 진흥기금에 일조한다는 마음으로 이 날이 있게 해준 복권 협회와 관계자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감사 복권 두 세장을 구입해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복권에 당첨되고도 복권 사는 일을 전혀 멈추지 않는 것은 일관성면에서도 그렇거니와 당첨 된 후에도 현 직장에 그대로 다닐 것이라는 진정성 있는 발언을 한 일부 당첨자들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당첨금 받으러 가는 길에 산 것이 또 당첨이 된다면 사양하는 일 없이 그대로 세금을 떼고 수령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는 복권 세장을 현금과 섞이지 않게 따로 주머니에 넣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이번에는 편의점 앞에 잠시 멈춰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광동탕 등이 빙글빙글 도는 온실 안을 살펴본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