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윤 한 로
잘났으면 다냐
똑똑하면 다냐
해와 같으면 다냐
달과 같으면 다냐
허구한 날
콩 담고 팥 담고
숟가락 담고 밥 담고
떡하니, 엎어졌으면 다냐
뒹구르면 다냐
두고 보자
내 밥 빌어먹을지언정
니눔 전혀
부랍잖다
시작 메모
낭성이라는 데를 지나가다 농촌 직거래 가게에서 바가지 하나를 샀다. 조청, 메주, 누룩, 소코리 이런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처음에 물도 몇 번 퍼마셨는데 나중엔 그만 골프공, 지갑, 묵주, 차키, 화투를 담아 두는 그릇이 되고 말았다. 자꾸 옛날 얘기만 하는 거 같은데, 우리 어머니들은 바가지를 쓰다가 짜개지면 꺼먹실로 숭숭 꿰매 쓰기도 했는데. 바가지만 보면 뭔가가 막 그립다. 그리웁다. 그래서 내 다음 번 시집 제목은 ‘바가지 같은 그리움이여’, 아니면 ‘바가지 사랑 노래’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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