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歲寒圖)
                    윤 한 로


뻥 뚫린 구멍
입처럼 아, 벌린
순 바보
엉터리 집 한 채
서귀포 대정 바다
저 새파란 물결 이랑이랑
겨울을 난다
너댓 그루 나무만
우줄우줄 둘러섰을 뿐
개중 한그루 가지 길게 구푸려
책 읽는 소리 듣는다두만
진종일 찾는 사람 하나 없는
빈 집
하다못해
사타구니 이 잡는 영감 하나
없구나


시작 메모
추운 시절을 그린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김정희가 예순 살이 다 돼서 제주도 대정으로 귀양갔을 때 그린 그림이다. 뻥 뚫린 둥근 구멍에 삐뚤빼뚤한 지붕, 그 밖에 아무것도 없는 빈 집을 그렸다. 다만 너댓 그루 키 큰 나무가 붙어섰다. 오른 켠에 두 그루 왼 켠에 두세 그루, 개중 왼 켠 한그루는 아무래도 암수 쌍 붙은 나무 같은데 가지를 길게 구푸렸다. 아마도 자기 시 속에 ‘빈 집에 종일토록 찾는 이 하나 없어 / 늙은 나무 고개 숙여 글 읽는 소리 듣는다’ 더니 바로 그 늙은 나무일 성싶다. 아무리 대쪽 같은 강고한 절개로 추위를 이겨낸다지만 대예술가가 그린 쓸쓸하고 엉성한 집 때문에 마음 아프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