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에서    

       윤 한 로

아 아
나이도 어린데, 나이도 어린데
질리오라칭게티의 노노레타가 흐른다
저무는 초저녁
차창 밖엔 눈이 나린다
통문장영어, 굴밥집, 핸드폰 가게
끝없는 불빛 속 얼마나 외로울까
어두운 잿빛 빈 나무 떨거지
실금 가장이들 흩날리는 눈송이에 스친다
나라는 인간
때 묻은 대학공책 한권 옆구리에 끼고
짐짓 흔들린다
여직, 아무 고통도
미칠 듯한 사랑도
뚜렷한 실패도, 기쁨도 없었으니
오직 철밥통 인생
가자
내 오늘 통속적 슬픔에 젖으련다 잠기련다
흔들리련다
딱, 두 정류장만큼만  



시작 메모
거룩할 것, 맑고 깨끗할 것, 진실될 것, 그러나 겸손할 것, 영혼을 수세미로 박박 문지를 것, 낮은 데로 더 낮은 데로 나아갈 것, 나는 내 할 일을 다 하고 있는 사람이시라. 어느새 영적 교만에 빠져든다. 그러니 있는 힘을 다해 통속적으로 갈 것. 뻔뻔스러워질 것. 시도 때도 없이 분노할 것. 불타오를 것. 마을버스 속에 하염없이 구겨져 꺼져버릴 것. 지저분한 내 영혼, 때 묻은 싸구려 대학 공책 여기저기에 갈겨쓸 것.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