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화(隱花)2 *

             윤 한 로

우리 아버지 하늘나라 가셨다
우리 어머니 하늘나라 가셨다

담뱃골 황토 인형 사 형제
빌어먹더라도 붙어다니며 빌어먹어라
베두렝이 허리마다 노끈으로 질끈 동여
떨어질 줄 모르는구나 조막손이 네 손구락처럼
꼭 붙었구나

천주 친히
먹여 주고 입혀 주고 거둬 주시리니
거친 사랑의 불길
너무 뜨겁게 구워버리셨어라
귀 떼이고 눈 떨어지고 코 푹 패였네
큰복이 작은복이
더 작은복이들

뉘엿뉘엿 해지는 저녁
깨진 입 호동그라니 벌려
밥 빌어먹듯
에미 애비 부르듯
기쁜 노래 즐겨 부르듯


* 은화(숨은 꽃) : 조선 말,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살던 천주 교우들을 상징함.

시작 메모
희광이 칼날에 아버지가 순교하고 어머니마저 순교했다. 이 세상에 어린 4형제 자식들만 남았다. 남은 자식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떨어지지 말고 꼭 붙어다니라고 유언을 남겼다. 이제 공중의 새들처럼, 들에 핀 들꽃처럼 천주 친히 먹여주고 입혀주시리라. 누군가 그 형제들을 황토 인형으로 빚었다. 떨어지지 말라 베두렝이 걸친 허리마다 동여놓은 긴 노끈도 황토로 빚었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